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연등 퍼레이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연등 퍼레이드

입력
2011.05.08 12:04
0 0

과거 힘들었던 시절, 매년 10월1일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국군의 날' 행사는 단연 최고의 볼거리였다. 탱크 미사일 등 최신무기와 각 잡힌 군인들의 폼 나는 행렬을 보려는 시민들로 가로변은 아침 일찍부터 메워졌다. 동원된 인근 초ㆍ중학생들도 신이 났다. 멋진 제목의 기마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했고, 당시로선 제일 높은 빌딩가인 서소문에서는 형형색색의 종이꽃가루가 뿌려졌다. 나라에서 딱히 내세울 게 없던 그때의 군사퍼레이드는 외부과시용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일체감과 자긍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내부축제에 가까웠던 것 같다.

■ YS정권 이후 국군의 날 퍼레이드는 5년마다 하는 걸로 바뀌었고 규모도 크게 축소됐다. 어차피 군사퍼레이드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선진국에선 보기 힘든 행사다. 체제 결속 등 안팎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매년 국가 역량을 쏟아 붓다시피 하는 북한을 포함, 일부 후진국이나 자주 치르는 행사다. 관제 퍼레이드의 소멸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울려 축제분위기를 즐길 만한 대표 퍼레이드가 없는 점은 좀 아쉬웠다. 반짝 행사용이 아닌, 나라와 도시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전통 퍼레이드는 훌륭한 문화상품이다.

■ 지난 토요일 밤 서울 종로거리에서 처음 본 '부처님 오신 날' 연등행렬은 이런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줄 만한 것이었다. 불 뿜는 용이나, 대포 쏘는 거북선 등 온갖 등(燈)조형물의 정교함과 아름다움, 규모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이로웠던 건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한복으로 성장한 노인 장년서부터 청바지 티셔츠 차림의 젊은이들,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 휠체어에 탄 장애인과 아기들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다양한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수만 명 퍼레이드는 일찍이 보지 못한 장관이었다. 하나같이 행복해하는 그 표정들도.

■ 공연과 놀이, 공연자와 관객이 구분되는 여느 퍼레이드와 달리 연등행렬은 누구나 끼어들 수 있는 개방형 놀이마당이었다. 아무에게나 건네는 "성불(成佛)하세요"도 종교적 해석을 달 것 없는 그냥 덕담이었다. 하긴 연등회가 시작된 신라 진흥왕 때부터도 절에서나 종교행사였지, 일반에선 등을 들고 밤새 행렬 지어 춤추며 복 나누던 놀이였다니까. 정치, 상업성 행사 외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축제문화랄 게 없다. 연등행렬 정도면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 퍼레이드로 키울 만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불교신자가 아니란 사족을 단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