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김인환 오생근 정과리
비평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대적 문제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 또는 텍스트의 윤곽을 본뜨고 그 섬모들을 고르는 것? 그것도 아니면, 텍스트의 표면과 내부의 운동 사이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인가? 사실은 모두일 것이다.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는 시대의 문제는 허황하기 일쑤고, 시대와의 어긋남을 고민하지 않는 텍스트는 시체와 다름없을 것이며, 모든 읽을 만한 텍스트는 세계의 문제를 제 몸의 상처로 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강석씨의 , 소영현씨의 , 김영찬씨의 을 최종 검토의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는 텍스트의 구체성에 몰입하는 가운데 세계의 창을 열어 나가겠다는 비평가의 의지를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은 세계의 위기와 텍스트의 진동을 평행시켜 조응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은 지금 시대의 문학적·문화적·사회적 문제들을 요령 있게 간추리고 알맞게 조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의 책이다. 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경험의 실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입증하는 대신 이론적인 전거들에 의존해 설명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바치고 있다. 은 삶의 세목들과 문학의 세목들 사이에 빗금을 긋는 작업을 무한히 증폭하는 데서 소음과 현란을 발생시키고 있다. 언어의 수량과 분열의 현기증은 얼마나 조응하는가는 탐구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은 우울증 환자의 창백한 납빛 표정에조차 말끔한 우유빛 살색을 회복시키고 있다. 이 모든 장단점들이 실은 한국 문학과 사회라는 난해한 숙제 앞에서 그들이 치열히 고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셋 중 한 권을 따로이 떼어내는 일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심사자들도 중구난방의 입씨름 속에 빠져 들어갔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영찬씨의 손을 들고 있었다. 사실 그의 승리는 세 사람 모두의 승리다. 이 미묘한 결정이, 한국문학비평의 돌연변이를 야기할, 특이점으로 작용하길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