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우
영화음악가
우리의 5월은 다양한 기념일로 가득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에 5.18 광주항쟁 기념일까지, 의미를 되새겨야 할 날이 많다. 사회적인 이해관계와 생업에 바쁘고 들뜬 마음을 잠시 떠나, 잊고 사는 가치들을 생각한다. 그 동안 나는 어떠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에 서는 형식적 선물과 외식으로 부담을 털고, 역사나 종교 기념일은 남의 일로 여겨 휴일을 즐기는 게 고작이다. 나이 오십 줄에 다가서니 그 동안 내가 무얼 위해 바빴는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뭐 그리 중요해서 가까운 곳의 가치들을 뒤로하며 살아왔는지 허무하다는 생각이 각성처럼 다가온다.
소소하게 여긴 주변 일들 속에 삶의 본질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각성이 너무 늦었다. 차일피일 미루며 찾아 뵈려 했던 스승과 어른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함께 모시고 여행 한번 가려던 부모님은 점차 여행할 기력을 잃으신다. 다음에 읽어야지 품고만 있던 책들을 이제 펴니 시력이 예전같지 않다. 역사 기념일을 남의 일이라 외면하고 지내다 나니, 내 영혼은 삶의 맥락 없이 자기 목표만을 추구하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큰 목표를 이루어야 비로소 주변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은 성공사례들이 떠받치고 있지만, 물질적이거나 상대적인 가치들에 국한한다. 얻은 후에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건 돈과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다. 그런 가치들은 주변의 희생을 통해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가치들로 내 인생과 주변이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는 망상이고, 타인과의 진실한 소통이 없는 자기만족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의 에서 허자는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 만물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선비도 많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군주도 많은데 세상은 어찌 이리 캄캄하고 가난합니까?” 실옹이라는 도사가 대답하길, “현명함이나 어진 정치라는 헛된 명성만 쫓다가 마음이 비뚤어져서 진실로 공정한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네. 공정한 마음이 없으면 올바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허자가 되묻길, “공정한 마음은 어떻게 수양해야 합니까?” 실옹은 “마당을 쓸고 손님을 응접하는 작은 일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학에 나오는 강령이다.
작은 일에서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 되돌아 본다. 진심을 멀리하고 소중함을 실행하지 못하는 마음이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이 타인과 무엇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각성은 작던 것이 커 보이고, 크던 것이 작아 보이는 가치의 역전이다. 큰 것을 포기하고 작은 것을 취하거나 작은 것을 취하고 큰 것을 버리는 선택이 아니다. 작음 속에 큼이 있고 큼 속에 작음이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일상에서 헛된 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한 일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니 마음이 무겁다. 존경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일이 정신의 수양이요 더 큰 목표를 위한 초석이라 생각하니 내 인생은 진리의 바깥으로 너무 오래 표류했다는 반성과 더불어 마음이 조급해 진다. 당장 찾아 움직이려니 그 동안 미루어 온 일들이 너무나 많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마음을 먹고 나니 왜 이리 몸이 아프고 근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5월의 흐린 봄 날씨가 상쾌함을 주는 건 뒤늦게 찾아 온 각성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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