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쓰레기들이 어떻게 위생적으로 처리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매립지가 어떻게 환경테마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는지 소개해 드릴게요."
4일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단. 휴양지로 유명한 필리핀 보라카이 출신 결혼이주여성 테레시타 아렌가(48)씨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곳을 찾은 10여명의 외국인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능숙한 영어로 쓰레기의 발효 및 에너지화 원리를 전달하자 이내 방문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가씨는 수도권매립지공사가 외국인 방문객 안내를 위해 다문화가정 주부를 대상으로 선발한 무료봉사단 '드림파크 서포터즈' 11명 중 한 명이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20년도 더 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한국에 건너 온 뒤 받은 도움을 생각하면 공부를 해서라도 잘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이 40대 외국인 주부가 통역봉사를 하고 있는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 인천지방경찰청, 인하대병원, 인천개발원 등 지역 내 6개 공공기관에서 쉴새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아렌가씨의 1주일은 '월ㆍ화ㆍ수ㆍ목ㆍ금ㆍ금ㆍ금'이고 카멜레온처럼 변신도 해야 한다. 일주일에 3, 4차례 인천경찰청을 찾는 그는 "얼마 전 인천 서구의 한 클럽에서 미국과 필리핀 동포 사이에 싸움이 있어 진술조사를 도왔다"며 "형사와 함께 폐쇄회로TV로 가해자의 도주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분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 3월부터 봉사를 시작한 인하대병원에서는 외국인 환자를 위한 안내역할은 물론이고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문진(問診)과 다름없는 일도 해야 한다.
아렌가씨가 한국에 온 때는 2000년. 수도 마닐라에서 컴퓨터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1999년 사업차 필리핀을 방문한 남편을 만나 첫눈에 반해 이듬 해 결혼에 골인, 남편과 함께 왔다. 결혼 초 언어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그는 동네 복지관에서 한국어강좌를 듣고 TV 드라마를 보는 게 낙이었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를 집 밖으로 이끈 건 필리핀 이주여성 모임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였다. 2009년 사회단체 '외국인을 위한 봉사회'에서 통ㆍ번역 업무를 맡아 그간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온 지 무려 8년 만이고 이후 지역 사회 곳곳에 힘을 보탰다. 아렌가씨는 바쁜 일상에서도 요즘 통ㆍ번역을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한국어능력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힘든 시절 저를 버티게 해 준 건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였다"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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