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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기계가 길들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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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기계가 길들이는 사람

입력
2011.05.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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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부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무척 기뻤다. 지난 세월 동안의 작품 실적에 미래의 중장기 계획까지 열심히 써내었지만 여러 가지로 자신이 없었다. 지원자는 오죽 많았으랴. 문인들 중 자신의 글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한 이는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런 사정 뻔히 알면서도 좋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할말 또한 없기는 하다.

기금이 통장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은행 체크카드를 내었다. '현금 이용은 안되고 카드로만 이용할 수 있다'는 글줄을 매뉴얼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취재를 하며 카드로 경비를 결제했다. 그 며칠 후 사용 내역을 보고하기 위해 접속한 페이지에서 내 카드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카드 인터넷 신청에 고역

문체부에서 원했던 카드는 은행카드가 아니라 예술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신청, 발급 받아야 하는 문체부 카드였다. 기금 사용내역을 문체부와 예술위원회가 수시로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뭐, 매뉴얼을 흘려본 내 잘못이 분명했다. 처음 기금을 줄 때 왜 카드를 같이 발급해주지 않았는지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예술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카드 신청을 시작했다. 그런데 거의 끝, 승인화면이 떠야 하는 시점에서 초기화면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인터넷 이용이 서툰 나로서는 인터넷 뱅킹이나 공인인증서 문제인지 아니면 내 컴퓨터에 묻었을 바이러스 문제인지 분간할 도리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예술위원회의 담당직원과 카드사의 직원을 어지간히 괴롭혔다. 죄송스럽다.) 이틀 밤낮을 씨름하던 나는 결국 내 휴대 컴퓨터를 들고 은행으로 갔다. 인증서도 새로 깔 겸 평소에 안면이 있던 젊은(!) 은행원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내 컴퓨터는 그곳에서 한 술 더 떴다. 인터넷 화면이 아예 잡히지도 않았다. 은행 본점 기술직원에게 통화하여 얻어낸 답은 "농협 해킹사태 이후 은행 전산망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 건물 내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벽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열어둔 은행의 단 한 대 컴퓨터를 빌어 가까스로 새 인증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께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인증서를 얻는 과정에서 내 계좌이체 비밀번호와 통장 비밀번호 등을 직원에게 죄 일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직원인들 마음이 편했으랴.) 집에 와서 카드 신청을 계속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잠까지 설치며 누구인지 모를 대상에게 화를 내던 나는 새벽에 다시 컴퓨터를 켰다. 갑자기 카드 발급이 승인되었다.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직장을 기입하는 칸에 무심코 집주소를 메운 것이 주효했을까? 직장이 따로 없으니 전날까지는 그 칸을 비워두었다. 아니면 새벽이라 인터넷 인구가 적어서?

앞으로도 나는 여러 사람들을 괴롭혀야 할 것 같아 죄송하다. 예술위원회의 직원이 "얼마든지 전화하세요." 말은 해주었지만 기금을 쓸 때마다 조목, 세목, 사용목적과 세부내역, 성과보고를 짜 맞추어 입력하는 일이나 처음 예산과 달라질 때마다 변경 내역서와 별도의 사유서 제출,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 번거롭고 엄청나 보인다.

피곤하고 남루한 문인들

어쩌면 문인들은 기계 내지 기계화 문명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는 부류일 수 있다. 무언가를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틀에 승복할 수 없어서, 승복되지 않아서 거꾸로 문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의 귀한 세금이라 한 점 의혹 없이 시행하려는 마음은 공감하지만, 문인들의 형편을 살펴 이런 기금을 운영한다는 자체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왕 문인들의 창작욕을 고취시키겠다고 시행하는 제도라면 그에 알맞은 접근방법은 없을까. 괜찮은 소설 하나 꾸리기에도 너무나 버거운 내 뇌의 용량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과 답 외에는 절대 듣지 않는 이 거대한 기계 뇌에 끌려 다니느라 영 피곤하고 남루하다.

윤영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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