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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손학규 대표의 그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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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손학규 대표의 그른 선택

입력
2011.05.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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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당연한 상수(常數)다. 특히 박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누가 야권에서 그의 대항마로 나설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맞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가 오래 전부터의 관심사였다.

프리미엄 못 살리는 '중심인물'

그런 터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4ㆍ27 재보선 분당을 선거에서 이겨 원내로 들어왔다. 지지율도 급상승해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당 대표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다시 2위로 올라선 것이다. 손 대표의 존재감과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지금 정치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손학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17대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여권 출신이라는 한계와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대표적 중산층 지역이며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분당을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자신과 민주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손학규의 이번 승리를 노무현의 정치역정과 같은 문법으로 읽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런 손 대표가 재보선 승리 후 첫 번째 내린 정치적 결정은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가로막은 것이다. 손 대표는 5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여야간에 합의한 비준동의안을 파기했다.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찬반 격론이 이어지자 손 대표가 "지금 이 상태로 통과시켜 주기는 어렵다"고 논란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손 대표는 합의 파기에 대해 "충분한 보완대책 없이 FTA를 통과시키는 것은 중산층의 바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FTA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면밀한 검토와 대책 마련,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시간을 달라는 게 반대의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손 대표는 비준안의 본회의 처리 연기를 요구한 만큼 이를 거부하고 강행하는 본회의에 불참한 것은 당연하며 몸싸움을 피한 것도 (종전과 다른) 변화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 대표의 이번 결정은 틀렸다. 우선 정치적 합의와 신의에 관한 문제다. 합의사항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마련한 것이었고, 민주당의 요구가 많이 반영된 내용이었다. 박 원내대표의 표현대로 정부가 내놓을 만큼 내놓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를 저버렸으니 정치 신의가 무너졌다. 이미 합의한 사항인 데다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앞둔 시점이어서 한나라당은 단독 처리를 강행하고 말았다. 그걸 예상하지 못할 리 없는 손 대표가 합의를 파기한 이유는 야권 연대와 당내의 반발세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치로는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없다. 지금까지 호평을 받아온 손 대표 개인의 합리적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박 원내대표의 말대로 의원총회에서 표결을 했다면 합의안 찬성이 우세했을 상황인데도 손 대표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고 누구나 말은 쉽게 한다. 그러면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는 걸 어떤 시기에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고뇌하며 한 차원 높은 결정을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더구나 이번 합의는 여야관계에서 모처럼 협상의 묘를 보여온 두 원내대표의 마지막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조무래기 정치 종식에 앞장을

많은 사람들이 자유당 시절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며 여당과의 협상에 응했던 조병옥 선생을 의회주의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회상하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조무래기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을 국민은 고대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지금 그런 정치를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한 자신의 힘과 프리미엄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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