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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맨발,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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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맨발, 그거면 족하다

입력
2011.05.0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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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계족산 14km 황톳길… 대지와의 교감 짜릿

맨발의 초대를 받았다. 대전에 있는 계족산이 둔탁한 등산화를 벗고 거추장스러운 양말도 벗고 찾아오라 청했다. 맨 발바닥과 살갑게 부벼대고 싶다는 대지의 간절한 손짓에 그만 발이 지남철에 끌리듯 그리로 향했다.

계족산(해발 420m)은 대전시가지와 대청호 사이에 서있는 산봉우리다. 계족산엔 14km 길이의 맨발걷기 코스가 있다. 산 중턱에서 한 바퀴 도는 13km 길이의 임도와 그 임도까지 오르는 1km 구간에 부드러운 황토가 깔려있다. 발바닥에 땅의 부드러움을 전해주기 위해 일부러 깔아놓은 황토다.

장동삼림욕장 입구가 맨발 황톳길의 시작점이다. 길 입구에서 이 길을 만든 분을 만났다. 충청권 소주업체인 선양주조 조웅래 회장이 버선발도 아닌 맨발로 뛰어나와 반겼다. 맨발의 조 회장을 따라 산을 올랐다. 오르막인 등산로 초입에서 맨발은 조 회장뿐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에게 이 길에 얼마나 자주 오냐 물었다. 일주일에 못해도 다섯 번은 찾는단다. 그에게 이 길은 집무실이고 헬스장이고 사교장이다.

술장사를 하는 탓에 거의 매일같이 술자리가 있다는 그는 "아침 이 길을 찾아와 30분 가량 걸으면 지난 밤 마신 술이 다 깬다. 그리고 나서 머리가 말짱해지면 이 생각 저 생각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맨발로 걷다 보면 머리가 비워지는 게 느껴진다. 과하고 불필요했던 것들을 덜어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덩달아 표정도 밝아진다. 비웠으니 이젠 그 곳을 채울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게 된다"고 맨발 황톳길을 예찬했다.

손님도 이리 초청해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누면 색다른 경험에 다들 좋아한단다. 그는 회사 임원회의도 월 2회는 이 길에서 연다.

계족산 맨발황톳길은 조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돼 만들어진 길이다. 6년 전부터 이 길에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면 흙이 쓸려나가 또 새로 깔아야 하는 지난한 사업이지만 쉬지 않고 길을 가꿨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숲속음악회장이다. 숲 속 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여럿 있는 공간이다. 길가에 신발 수십 여 켤레가 일렬로 놓여 있다. 맨발 순례객들이 벗어놓은 것들이다. 조 회장은 누가 집어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벗으란다. 그 신발틈새에 신고 있던 등산화를 벗어놓고는 벌건 황토에 맨발을 디뎠다.

신발, 양말을 떼어낸 발바닥이 땅과 호흡을 시작한다. 발바닥의 첫 느낌은 시원함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황토 바닥은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다. 이 묘한 느낌이란. 발바닥은 의외로 예민했고, 황토의 땅바닥 느낌을 온전히 빨아들였다. 그 촉감이 신기해 이곳 저곳을 밟아보았다. 양지 바른 곳은 조금 따뜻하면서 건조했고, 꽃잎이 떨어진 꽃길에선 아주 약간 미끄러운 듯한 꽃잎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날씨에 따라 습기에 따라 황톳길의 느낌은 달라진다.

계족산 순환 임도에 이르기 직전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대전시 수미초교 6학년 아이들이 단체로 맨발 소풍을 나왔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얼굴이 오월의 햇살만큼이나 밝다. 조 회장은 "흙길의 힘"이란다. 아스팔트 포장길에선 뛰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이 황톳길에선 누가 권하지 않아도 맨발로 좋아라 뛰어다닌다고 했다.

드디어 순환로에 올랐다. 산을 한 바퀴 휘감는 13km의 순환로에는 경사가 거의 없다. 길 폭은 5m 가량. 그 폭의 3분의 2 가량이 황토로 덮여있다. 황톳길이 비가 오면 너무 질척거려 일부러 길 전체를 덥지 않은 것. 황토가 빗물을 타고 옆으로 점점 붉게 번져가는 모양이 곱다. 그 붉은 길 위에 산벚꽃이 손톱만한 하얀 꽃잎을 떨구었다. 걷지 않고 보기만 해도 황홀한 길이다. 매일 누가 빗자루 질을 해놓은 듯 길에는 발바닥을 아프게 할 작은 돌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 그늘 드리운 푹신한 황톳길을 계속 걷는다. 삼림욕이 더해져서인지 걸을수록 몸은 상쾌해진다. 조 회장이 맨발길을 조성하게 된 건 6년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계족산 산행을 즐기던 그는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이 곳을 찾았다. 일행 중 하이힐을 신고 있던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신발을 벗어주고 양말만 신고 길을 걸었다. 당시 산길은 돌투성이의 거친 길이었다. 양말만 신고 걸으면서 그는 묘한 것을 느꼈다. 거친 돌길이라 발바닥은 아팠지만 머리가 아주 맑아졌다. 종아리와 허벅지에선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기운이 스멀거렸고, 온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굳었던 몸이 편안한 상태로 되찾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날 밤 그는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조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여럿이서 나누고 싶었다. "맨발 걷기의 큰 장애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남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부상 우려다." 그는 부상 위험을 없애기 위해 길 위의 돌을 치우고 전북 김제 등에서 황토를 가져다 깔기로 했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맨발마라톤대회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나만 벗으면 뻘쭘 하지만 함께 벗으면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황톳길을 걷는 이들의 절반 가량은 등산화 차림이고, 나머진 맨발이다. 맨발 순례객들은 신발 신은 이들보다 조금 느리게 걷는다. 걸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리기에 땅과 더 많은 느낌을 주고받는다. 개미 한 마리, 꽃 한 송이가 발에 차일까 조심스럽다. 느리기에 숲을 느끼는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맨살로 숲과 대지의 정기를 나누고 있어 더 그럴 것이다.

길 중간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깔고는 준비한 도시락을 펼쳤다. 시선은 도시락 뚜껑 보다 내 맨발바닥에 먼저 갔다. 두 시간 가량 황톳길을 걸어온 발바닥이 예쁘게 화장을 했다. 홍조 띤 새색시마냥 붉게 상기됐다.

대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계족산 맨발축제 13일부터

계족산에선 13일부터 사흘간 맨발축제가 열린다. 아마도 지구촌 전체에서 맨발을 기리는 축제로는 유일할 것이다. 축제의 컨셉트는 에코힐링(eco-healing). 숲속의 황톳길에서 자연과 건강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축제 사흘간 장동삼림욕장 황톳길에선 국제설치미술제가 펼쳐진다. 올해 6회째인 계족산 맨발축제에선 처음 도입한 미술제다. 숲속음악회장에서 개회식과 함께 행위예술이 진행되고, 황톳길 곳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설치작품들이 조성된다.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참여작가는 내국인 20명, 외국인 12명으로 모두 32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구간별로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치하고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맨발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맨발 걷기와 맨발 달리기. 15일 오전에 13km 임도 일주구간에서 맨발 달리기가, 절반까지만 다녀오는 7km 구간에선 가족걷기가 진행된다. 참가 인원은 5,000명이다. 정원이 초과될 경우 컴퓨터 자동추첨으로 참가자를 결정한다. 참가비는 걷기 7,000원, 달리기 1만5,000원. 1983년 이후 출생자는 무료다. 달리기 코스의 결승점 부근엔 울긋불긋한 꽃잎을 바닥에 가득 깔아 꽃길로 꾸며놓는다. www.barefootfesta.com

■ 여행수첩

경부고속도로 신탄진IC에서 나온다. 직진한 뒤 막다른 삼거리에서 우회전, 17번 국도로 계속 직진하다 장동삼림욕장(계족산성) 이정표를 보고 유턴해 우회전을 해 들어가면 삼림욕장 주차장에 이른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황톳길 전체에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햇빛을 피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계족산 장동삼림욕장 입구나 황톳길 곳곳에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여럿 있다. 도시락이나 간식, 물, 발 닦을 수건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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