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총괄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선장을 잃고 표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시즌 초반, 폭발적인 관중 증가세를 보이며 불을 지핀 흥행 열기와 10구단 창단 추진에도 찬물을 끼얹게 됐다.
지난 3일 저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된 유영구 KBO 총재가 구속 하루 전날 전격 사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8년 12월 중도 사퇴한 신상우 전 총재의 후임으로 제17대 총재에 추대된 유영구 총재는 잔여 임기를 7개월 가량 남겨두고 낙마하게 됐다.
이상일 KBO 사무총장은 4일 전화통화에서 “유 총재가 영장실질심사 하루 전인 지난 2일 KBO에 들러 사퇴서를 제출했다”며 “이에 따라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유 총재가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KBO는 다음 주중으로 8개 구단 사장이 참석하는 이사회를 열고 후임 총재 인선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행 야구 규약 14조[총재의 궐위시 조치]는 ‘총재가 사임·해임 등의 사유로 궐위돼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1개월 이내에 보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10조[임원의 선출]는 ‘총재는 이사회에서 재적이사 4분의 3이상의 동의를 얻어 추천하며, 총회에서 재적회원 4분의 3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 후 주무관청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보선 절차가 지연될 때에는 이사회에서 총재 직무대행자를 선출할 수 있다.
이 총장은 “구단주 총회에서 새 총재를 선출하면 과거에는 문화부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사후 보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소한 현행 제도상으론 과거처럼 ‘낙하산 총재’가 임명될 가능성은 적다는 뜻이다.
유영구 총재는 지난 2009년 2월, 박용오 전 총재 이후 처음으로 두 번째 민선총재로 취임하며 기대를 모았다. 유 총재는 재임 기간 무보수로 헌신하며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및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제9구단 엔씨소프트 창단 ▲낙후된 대구ㆍ광주 구장 신축 추진 ▲중계권 및 타이틀 스폰서 금액 확충 ▲프로야구 흥행 등 야구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 총재는 명지학원 이사장 시절인 지난 2006년 명지건설 채무 1,500억원에 대해 개인 지급보증을 선 뒤 명지학원 교비로 이를 상환, 특정범죄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특히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 학교법인 감사 무마를 위해 정ㆍ관계에 로비를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KBO는 박용오, 신상우 전 총재에 이어 유영구 총재까지 최근 5년 새 3명의 커미셔너가 모두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역대 총재 11명 가운데 임기를 다 채운 경우는 1~2대 서종철 총재(작고) 밖에 없다. 또 KBO 총재가 재임 기간에 비리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것은 5대 이상훈, 11대 정대철 전 총재에 이어 3번째다.
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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