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10년 숙원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 제거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정당성 논란에 휩싸였다. 빈 라덴 사살 과정에서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을 번복하면서 스스로 논란을 키운 것이다. 특히 빈 라덴이 사살 직전 무장을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이 처음부터 그의 생포를 배제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은 빈 라덴 사살 직후인 지난 2일(현지시간) 빈 라덴이 "저항했으며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을 통해서다. 여기에 더해 미 언론들은 익명의 미 정부관계자를 인용, "빈 라덴이 직접 AK47 소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하루 만에 뒤집혔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3일 빈 라덴이 사살 당시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번복했다. 무장하지 않은 빈 라덴의 사살 이유에 대해선 "가능하다면 그를 생포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상당한 정도의 저항이 있었고, 빈 라덴 이외 무장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빈 라덴이 당시 무장을 한 채 저항을 했는지는 미국으로선 사살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핵심 '팩트'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이 애초부터 사살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빈 라덴 제거 이후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핵심 당국자들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익명의 미 안보관료는 2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사살작전이었다"고 못박기도 했다.
번복에 대한 해명도 석연치가 않다.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3일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군색한 해명이란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 특수부대가 비무장한 사람을 쐈다는 비난을 피하려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하며 "백악관의 설명은 이런 모순들로 인해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빈 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활용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번복했다. 미
언론들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2일 빈 라덴이 그 여성을 방패삼아 뒤에서 총을 쐈다고 말했다고 전했지만 카니 대변인은 "불확실하다"고 물러섰다. 모든 작전 수행을 실시간으로 봤는지에 대해서도 진술이 엇갈렸다. 브레넌 보좌관은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작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파네파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20~25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둘 중 하나는 사실과 다른 것이고 이 대목에선 빈 라덴 사살 과정이 모니터 됐는지가 핵심이다. 모니터 됐다면 브레넌 보좌관은 몰라서가 아니라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빈 라덴의 시신 공개를 둘러싼 혼선도 계속됐다. 카니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사체가 너무 참혹하다"며 비공개에 무게를 뒀지만, 파네타 국장은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공개 논란이 확산되면서 빈 라덴의 사망 진위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신정훈 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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