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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빈 라덴 사살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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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빈 라덴 사살과 정의

입력
2011.05.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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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원흉으로 지목한 것은 1997년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서부개척시대의 흉악범 현상수배 제목처럼'죽이든 살리든(Dead or Alive)'잡으라고 명령했다. 2001년 9ㆍ11 사태 뒤 부시 대통령이'테러와의 전쟁'을 선포, 빈 라덴을 제거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도 그랬다. 그러니까 미국이 2일 빈 라덴을 생포하지 않고 사살한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억측일지 모르나, 그게 미국적 전통인 셈이다. 부시와 오바마 대통령이 나란히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한 것은 자연스럽다.

■ 무려 14년에 걸친 추적, 10년 가까운 전쟁 끝에 '공적(公敵) 1호'를 처단했으니 환호할 만하다. 지루하고 소모적인 전쟁에 염증을 느껴 부시에게서 등 돌렸던 이들도 뒤늦은 응징은 기꺼워할 것이다. 영국을 비롯해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참한 나라들도 전쟁 목표 달성을 반기며 축하를 보냈다. 21세기의 첫 10년, 새로운 시대를 불안하게 보낸 세계는 테러와 전쟁의 드라마가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난 것을 다행스레 여기는 듯한 분위기다. 할리우드 서부영화는 늘 악당의 죽음으로 끝나고, 불이 켜진 뒤 관객들은 마주보며 미소 짓게 마련이다.

■ 그러나 세계가 모두 웃는 것은 아니다. 보복테러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터키 등 이슬람권에서는 시체를 서둘러 수장(水葬)한 것에 "진짜 빈 라덴일까"하는 의혹을 더러 제기하는 모양이다. 군 시설이 밀집한 곳에 은신처를 제공하고 보호한 혐의가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침묵했으나, 여론은 "이슬람의 친구가 죽었다"는 쪽이 많다고 한다. 스웨덴 등 북유럽은 대체로 "미국의 일"이라며 무덤덤한 표정이다. 중국도 정부는 입을 다문 가운데, 네티즌은 축하와 애도가 엇갈린다는 소식이다.

■ 영국 독일 등의 권위 언론과 국제법 전문가들도 엇갈린 논평을 내놓았다. 빈 라덴 스스로 성전(聖戰)을 선포한 만큼 총격전 끝에 사살한 것은 정당하다는 의견과, 테러 사주 혐의가 재판에서 입증되지 않은 마당에는 불법적 처형이고 복수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애초 대단찮은 빈 라덴의 위협을 과장,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으로 숱한 희생과 파괴를 남긴 것이 과연 정의인지 새삼 반문한 논객도 있다. 미국의 우방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줄곧 행방을 알고 있었을 빈 라덴을 뒤늦게 찾았다며 죽인 것은 '아랍의 봄'을 둘러싼 정략적 게임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이래저래 논란은 갈수록 흥미진진할 듯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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