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진작 바꿨어야 했다.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가 끝나고 나서, 그러니까 작년 말 개각 때 새 경제팀장을 임명했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대해선 종종 '타이밍을 놓친다'는 지적이 있어왔는데, 윤 장관의 경우가 바로 그 케이스라는 생각이 든다.
윤증현 장관을 휩싼 피로감
이유는 지금 윤 장관에게서 느껴지는 두 가지 인상 때문이다. 많은 피로감, 그리고 작은 존재감. 경제를 총괄하는 야전사령관이라면 존재감이 넘치고 피로감은 적어 보여야 하는데, 현재의 윤 장관은 정반대다. 그가 능력 경륜 인품 소신을 겸비한 최고의 경제관료이고, 과천(공무원사회)과 여의도(국회ㆍ시장)로부터 모두 존경 받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이미 피로감이 열정을 가려 버렸다면, 무거운 존재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면 '경제팀장으로서의 수명'은 벌써 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론 아쉽게도, 다른 한편으론 다행히도, 곧 단행될 개각에서 윤 장관은 바뀌는 모양이다. 하지만 누가 되든, 하마평대로 백용호 임태희 윤진식 혹은 다른 인물이 발탁되더라도, 새 기획재정부 장관은 피로감과 존재감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피로감. 사실 의욕과 열정 넘칠 새 장관에게 피로감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일 게다. 그보다는 주어진 임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핵심은 '선발투수'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경기(정권 임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좋든 싫든 새 기획재정부 장관은 '마무리투수'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종반의 열기가 시작과 같을 수는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는 시기다. 심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선 '되는 일'보다는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텐데, 제풀에 지친다면 피로감은 더 증폭될 것이다. 반대로 선발투수인 양 강공을 펼친다면, 상황은 꼬이고 본인 역시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존재감이다. 아무리 부총리제가 폐지되었다 해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팀의 간판이고 중심이다.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곳 장관이 팀장으로 경제부처 전체를 이끌어온 것은 1970년대 산업화 이래 계속되어온 정부 경제운용의 큰 틀이다.
윤 장관의 최근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의 목소리만 들렸을 뿐 윤 장관의 존재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조용한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팀장은 보이지 않고 팀원들만 각개 약진할 때, 경제는 '사공 많은 배'처럼 산으로 가게 되어 있다. '물가와의 전쟁'국면에서 개별 부처들이 실효성 없이 무리수만 남발한 것, 초과이익공유제나 연ㆍ기금 주주권 행사처럼 민감한 이슈를 놓고 정부 내에서 엇박자가 흘러나오는 것 모두가 다 그런 경우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정제되고 조율된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게 경제팀장의 역할인데, 적어도 G20 회의 이후 정부안에는 '팀도, 팀장도 없었다'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후임에 대통령이 힘을 줘야
장기재임이 가져온 윤 장관 개인의 피로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정권 내 지분이 없는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고, 팀장 권한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MB정부의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존재감 상실은 심각한 문제다. 새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떻게든 경제팀장의 리더십부터 복원해야 한다.
내년 대선까지 이제 1년 반. 그냥 둬도 저절로 힘이 빠지는 시기다. 만약 팀플레이까지 실종된다면, 피해는 국민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장(智將)이든 용장(勇將)이든, 새 경제팀장에겐 힘이 실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 힘은 대통령만이 줄 수 있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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