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만 해도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는 가사가 나오는 ‘사노라면’이라는 유행가는 술자리에서 애창되는 청춘들의 18번이었다.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감히 세속적인 이해타산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으며, 그런 사랑을 꿈꾸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가사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아니, 감흥은커녕 웬 철없는 사랑타령이냐는 핀잔이나 듣기 딱 좋을 것이다.
안정된 생존조차 기약하기가 너무나도 버거운 한국사회의 무거운 현실 때문이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나의 사회경제적 동맹으로 여기는 듯하다. 즉 혼인과 재테크가 합쳐진 ‘혼테크’라는 말이 잘 보여주듯, 두 사람의 생존확률을 크게 높여줄 수 있거나 혼자 힘으로 배우자의 생존까지 보장해줄 수 있는 그런 경제력 있는 배우자 선택을 무엇보다 중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풍조에 더해 경기불황으로 인한 취업난이 젊은 층을 덮치자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서두르려는 여성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결혼연령이 낮아지는 조혼현상과 취업 대신 시집을 가려는 ‘취집’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취집은 ‘취업’과 ‘시집’의 합성어로 힘겨운 취업을 포기하고 조건이 괜찮은 결혼자리를 찾아서 결혼하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최근에 한 취업포털이 20, 30대 미혼여성 구직자 3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 대신 취집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45.5%에 달했다. 즉 취집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취업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취집을 생각하게 되는 때를 묻는 질문에 ‘계속 취업이 안될 때’(44.4%ㆍ복수응답), ‘구직활동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43.8%), ‘결혼한 친구가 안정적으로 보일 때’(30.7%), ‘생활이 너무 불안정하다고 느껴질 때’(28.1%), ‘취업전망이 좋지 않을 때’(26.8%), ‘주변에서 취업에 압박을 줄 때’(25.5%), ‘입사지원 나이에 걸려 취업이 어려울 때’(20.9%)의 순으로 대답한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어차피 취직을 못할 바에야 경쟁력이 있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야 더 좋은 신랑을 구할 수 있다는 여성들의 현실적인 판단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도피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의 결혼은 장차 사회적 생존능력의 결여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혼을 하게 되면 혼자서는 먹고 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일부 주부들은 나쁜 남편한테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노예처럼 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미래가 바로 현실도피적 결혼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자기 인생을 보상받기 위해 남편이나 자식에게 과도하게 집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병적인 집착으로는 스스로가 포기해버린 인생을 되찾을 수 없으며, 그런 집착은 남편과 자식을 숨 막히게 만들면서 자기도 파괴하기 마련이다.
셋째,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배우자를 선택할 위험이 크다. 취업경쟁에서 패배 혹은 도피했다는 생각은 자존감을 갉아먹어서 심리적 하강기에 들어서게 만든다. 하지만 배우자 선택이나 결혼은 심리적 하강기가 아닌 상승기에 하는 게 원칙이다. 왜냐하면 하강기에는 자포자기식의 하향선택을 할 위험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취업난 때문에 취집을 피할 수 없다면, 자존감 관리를 잘 함으로써 평생 후회할 잘못된 선택만은 피해야 한다. 혹은 이왕 취집을 할 바에야 바보 온달을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평강공주가 한번 되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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