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1일 밤 11시. 중국인 진쏭메이(秦松梅ㆍ27)씨는 김해공항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수중에 돈 한푼 없이 공항 밖으로 나와야만 했던 것. 한국 땅을 처음 찾은 그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일본 도쿄의 오챠노미즈대학원에 다니던 진씨는 지진과 방사능 오염을 피해 고향인 중국 산둥성 칭다오로 가던 길이었다. 어렵게 구한 항공편은 직항이 아니었다. 그는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연결 항공편으로 떠나면 되겠다 생각했다. 김해공항이 밤 11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국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공항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영어도 할 줄 몰라서 공항을 벗어나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죠.”
어둠이 내린 김해공항 근처에는 호텔도, 불이 켜진 가게도 없다. 여자 혼자 몸으로 꼼짝없이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진씨는 전날 일본에 여진이 이어진 탓에 밤을 꼬박 샌 상태였다.
에어부산의 문보경(28)씨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운항관리사여서 마지막까지 공항에 남아있던 문씨는 퇴근길에 공항 안전요원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갔다.
문씨는 서툰 일본어 실력이지만 진씨의 딱한 사정을 알아 듣고 숙소를 마련해줬다. 문씨는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 겁나지 않았냐고 진씨에게 물었더니,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하더라”며 “이게 인연이 아니겠냐며 서로 한참 웃었다”고 말했다.
진씨는 지난달 “덕분에 무사히 고향에 도착했고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갔는데 한국인들은 정말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됐다. 인사를 드리러 한국을 꼭 다시 찾겠다”는 감사편지를 에어부산에 보냈다. 문씨는 “공항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보람됐다. 앞으로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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