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열 패밀리' 권음미 작가이런 묵직한 주제 언제 또 할까 싶었죠"
뻔한 사랑 타령을 탈피한 비정한 재벌가 이야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극대화한 미드식 구성. 지난달 28일 종영한 MBC '로열 패밀리'는 초반의 무서운 질주를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롤러코스터 식 전개와 염정아 김영애 등의 명품 연기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인간 존엄이라는 묵직하고도 추상적인 주제를 흥미롭게 그려내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소설 을 원작으로 해 '아들을 죽게 한 엄마'라는 모티프가 알려진 상황. 스포일러가 난무한 악조건 속에서 원작을 비튼 작가의 공력이 빼어났다. 흑인 청년의 죽음을 수사한 형사가 유력 정치인의 아내인 용의자 교코의 과거를 추적한다는 원작의 설정은 재벌가에서 그저 K로 불리며 18년을 산 김인숙(염정아)을 구원자로 알던 한지훈(지성)이 혼혈 청년 조니 살인사건을 추적하며 K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종영 다음날인 29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권음미(43) 작가를 만나 못다한 얘기를 들어봤다. '로열 패밀리'는 '종합병원 2'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초반 무서운 상승세를 끝까지 끌고 가진 못했다.
"4부까지는 화제작 '싸인'과 붙어 고전하다 5부부터 시청률이 확 오르면서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알바' 써서 관리하는 것처럼 게시판도 칭찬 일색이었다. 8부에 조니가 등장하면서 불편한 글들도 많아졌지만. 사실 앞부분 김인숙의 승승장구는 묵직한 주제를 끌고 가기 위한 유인장치였는데 오히려 시청자들은 이 부분을 좋아하더라.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았다. 그래도 언제 또 이런 묵직한 주제를 해보겠나 싶어 맘껏 관념적으로 썼다. 다음에는 시청률에 충실해 보고 싶다(웃음)."
-'히트' '선덕여왕'을 공동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화제가 됐는데.
"작품 전반의 기획과 스토리라인, 세세한 인물 성격 구상까지 함께 했다. 그분들이 나를 집필작가로 발탁한 거다. 2년 넘게 함께 이 작품에 매달리며 수많은 버전을 만들어냈다. 김 작가는 한국방송작가교육원 시절 내 선생님이었다."
-김인숙이 결국 악녀라는 추측도 무성했는데.
"조니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암시가 있었지만 한 번도 죽였다고는 안 했다. 김인숙이 욕망에 눈이 멀어 다친 아들을 외면했지만 원작의 교코보다 착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아들 죽인 엄마라는 설정은 아마 방송 편성을 못 받았을 거다. 아들 둔 엄마로서 나도 교코를 이해 못하겠더라. 상황에 몰려서 벼랑 끝에 갔지만 인숙은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기사나 네티즌 반응을 신경 쓰나.
"매일 기사는 물론 댓글까지 다 챙겨본다. 신랄하고 뼈아픈 지적이 참 많더라. 지엽적인 이야기로 욕하는 걸 보면서 '아 끊어야겠다' 했다가도 중독성이 있어 또 보게 된다. 중반부에 지성씨가 실제 집안 화재로 팔을 다쳐서 붕대를 감고 나왔는데 네티즌들이 이걸 복선이라고 추측 하더라. 작가 이상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실제 재벌가 비화 같은 소재들이 화제였다.
"(극중 재벌간 입점 다툼을 벌인) 화장품 '딜랑'은 원래 명품 가방이었는데, 모 기업에서 광고 다 끊는다고 외압 들어오고 해서 바꿨다. 김인숙이나 조현진(차예련)의 실제 모델이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건 진짜 아니다."
-재벌 얘기는 따로 취재를 했나.
"재벌들을 가까이에서 본 모 대사 부인, 재벌가에서 일한 변호사 등이 도움을 줬지만, 대부분은 상상해 만들어낸 얘기다. 책에서 봤는데 재벌가에선 '집 소파가 멋있다' 뭐 이런 칭찬을 하면 안 된다더라. 최고를 가진 건 너무 당연한 거라서. 자부심과 선민의식이 남다를 거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누가 최고였나.
"(어찌 한 사람만 꼽겠냐고 손사래를 치던 끝에) 염정아씨가 워낙 연기가 되니 대사 쓰는데 두려움이 없어지더라. 작가도 배우를 봐가며 대본을 쓴다. 존엄이니 구원이니 이런 관념적인 대사들을 낯간지럽지 않게 소화해서 감사했다. 사실 캐스팅 때 정아씨는 착하지 않게 보일까 봐서 걱정했는데(웃음) 이중적인 김인숙을 너무 잘 표현했다."
-주인공들이 헬기사고로 실종된 걸로 처리했는데.
"인숙은 자기 심판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각자 믿는 대로 봐달라고 열린 결말로 갔다. 죽여야 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만날 울었다. 꺼이꺼이 울다가 보조작가들한테 '걔들 안 죽었다. 코르시카에 가서 잘 살 거다' 이러기도 했다(웃음). 지훈이 인숙과 헬기를 타고 가며 언급한, 생텍쥐페리가 실종됐던 섬 코르시카로 13일쯤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거기서 다정한 연인들을 보면 그들로 보일 것 같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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