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어떤 TV 프로그램을 주로 보냐고 물었다. 답은 사실 빤하다. 어른들 보는 거 똑같이 본다. KBS '웃어라 동해야'같은 드라마 줄거리를 줄줄 꿰는 것은 물론, MBC '무한도전', KBS '1박 2일' 같은 인기 예능, 가요 프로그램도 빠트리지 않고 본다. TV를 아예 못 보게 하지 않는 한 선정적인 내용이나 막말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뽀로로를 뗀 이후 아이들이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방송심의규정상 어린이는 13세 미만)을 위한 TV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야한 장면 나오면 엄마가 채널 돌려요"
지난달 21일 어린이 채널 니켈로디언의 VJ음악프로그램 '스쿨:TV'(목 오후 9시30분, 5일 시즌2 첫 방송) 녹화가 한창인 경기 분당 불곡초등학교. 6학년 교실을 찾아 TV 시청 현실과 바람에 대해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무한도전이 짱이에요. 박명수 완전 웃겨요. 볼 게 없어서 뽀로로도 가끔 봐요."(안덕원) "뮤직뱅크 같은 음악 프로는 꼭 봐요."(김준영) "'마이더스' 같은 드라마 다 봐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이해 못하는 부분은 거의 없어요."(유효리) "같이 드라마 보다가 야한 장면 나오면 엄마가 채널 돌려요."(정다연) "어린이 판타지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한소윤)
눈높이 맞춘 케이블, 유아용만 트는 지상파
초등 고학년을 타깃으로 한 '스쿨:TV'는 또래 VJ가 학교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뮤직비디오 신청을 받아 틀어주는 형식. 케이블이란 제약이 있지만 지난해 시즌1 때 호응이 높았다. 초등생들이 관심 갖는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재능TV의 '송은이의 eye to eye'(일 오전 9시) 등 어린이 채널에는 그래도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꽤 있다.
지상파에서는 EBS의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월~금 오후 6시)나 SBS의 '꾸러기 탐구생활'(수ㆍ목 오후 4시30분) 등이 고학년 대상. 이마저도 학교생활이나 호기심 탐구 같은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다. KBS나 MBC는 만화영화나 유아 프로그램 일색이다.
'스쿨:TV'의 김현욱 PD는 "어른들이 봐서 시시한 건 애들도 재미없어 한다. 유치하지않으면서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학년 어린이 시청권 박탈 심각
현재 지상파에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해야 한다는 규정뿐, 어린이 프로그램 의무편성 규정이 없다. 방송사들이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없애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사들은 낮 시간에는 아이들이 거의 다 학원에 가 있고, 저녁 시간대에 어린이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어렵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TV보기가 어린이들 여가활동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시청권 박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YMCA 어린이 영상문화연구회 안수경 간사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한 살 차이여도 세상을 보는 지적 능력과 관점이 다르다. 하물며 고학년과 유아를 한데 묶어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분류하는 것은 엉터리"라며 연령대별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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