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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사살] 美 네이비실 헬기 4대로 급습… 교전 40분 만에 '작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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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사살] 美 네이비실 헬기 4대로 급습… 교전 40분 만에 '작전 끝'

입력
2011.05.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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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결정적 단서 입수후 극비리 '계획'빈 라덴 안가 4~6m 담에 에워싸여 요새화여성 1명 인간방패 이용하는 등 극렬한 저항도

수개월에 걸친 치밀한 정보전이 만들어낸 개가였다. 미 특수부대가 1일 새벽(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성명이 나오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누구도 예상키 어려웠다. 백악관 취재진은 불과 몇시간 전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밤 늦게 “중대한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달받았을 뿐이다. 백악관 고위관리는 “동맹국들에게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며 “백악관 내에서 사전 통보를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말했다.

작전이 최종 승인된 것은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집중됐던 지난달 29일.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오바마 대통령은 리언 파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생포 또는 사살” 작전을 재가했다. 이틀 뒤인 1일 새벽 1시15분께 특수부대와 CIA 요원이 중심이 된 “매우 적은 수”의 급습이 개시됐다. 투입된 요원은 20~25명으로 미 해군특전지원단(네이비실)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미군을 실은 헬기 4대가 은신처에 접근하자 알 카에다 요원들이 지붕에서 추진식 유탄발사기 등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 미 당국자는 “미군의 피해는 없었다”고 했으나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추락했다.

교전은 40여분 만에 끝났다. 총격전의 와중에 빈 라덴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살됐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빈 라덴의 아들을 포함한 남성 3명이 숨졌고, 여성 한 명이 빈 라덴의 인간방패로 이용돼 최후를 맞았다.

빈 라덴의 안가는 미 당국자들도 고개를 흔들 만큼 철저히 요새화돼 있었다. 견고하게 구축된 4~6m의 담이 에워싸고 있는 3층 건물은 여러 개의 벽으로 내부가 분리됐다. 당국자는 “은신처는 2005년에 지어진 것으로 그 비용이 100만 달러에 달할 정도였으나 전화는 물론, 인터넷도 없었다”며 “모든 것이 빈 라덴의 안위를 목적으로 개조됐다”고 말했다. 당국자는 “빈 라덴의 은신처라면 어떠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전혀 틀리지 않았다”며 “우리가 본 견고함은 충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미 정보당국이 빈 라덴의 행적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얻은 것은 지난해 8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모하메드의 과거 심복이 빈 라덴과 거처를 같이 한다는 진술을 끌어내면서 빈 라덴 제거작전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모하메드는 9ㆍ11 테러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빈 라덴의 최측근. 이후 극비리에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보팀 회의가 5차례 소집됐다. 수개월 동안 진술의 진위를 확인하고 심복의 행적을 쫓는 지난한 첩보전을 벌인 끝에 빈 라덴의 거처를 확인한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작전 OK’ 사인을 내렸다.

미국은 4년 전까지만 해도 빈 라덴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근처에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했을 뿐, 정확한 행방을 찾지 못했으나 2009년 모하메드 심복의 활동지역이 이슬라마바드의 인접지라는 첩보를 확보하고 국경 근처 파키스탄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정찰활동을 벌여왔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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