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단체 '재정 파탄' 경고음 "2, 3년내 자립도 50% 밑 추락"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이 갈수록 텅 비어가고 있다. 빚은 갈수록 늘어 대다수 지자체들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사회복지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특히 지자체의 SOC사업을 떠맡은 지방공사들은 상당수가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다. 중앙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지자체들이 늘어 17년째 맞은 풀뿌리 지방자치가 자칫 허울에 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일 각 지자체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0년 60%(59.4%)에 육박했던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올해 51.9%로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길어도 2,3년 안에는 재정자립도가 사상 초유로 50% 밑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자체 간의 재정자립도 편차도 심하다. 서울(88.8%) 인천(65.8%) 울산(62.5%) 경기(60.1%)는 60%가 넘는 반면, 전남(13.5%) 전북(18.6%)은 여전히 1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시도에서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무원 월급 주는 거 외에는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곳간이 비면서 빚(지방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3년 16조5,264억원이던 전국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 규모는 2005년 17조4,480억원, 2008년19조486억원으로 늘어나더니 2009년에는 25조5,531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방채의 성격도 나빠지고 있다. 2006년 0.9%(1,583억원)로 미미했던 단기채(상환기간 1~4년) 비율은 2007년 1.5%(2,727억원), 2008년 2.5%(4,730억원)로 늘더니 2009년에는 13.0%(3조3,279억원)로 10%선과 3조원을 훌쩍 넘었다. 단기 지방채가 급증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재정이 하루 앞을 기약하기 힘들 만큼 급박해졌다는 방증이다. 단기채는 금리도 높아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준다.
지방재정 악화의 원인은 ▦정부의 감세정책 ▦사회복지서비스와 4대강 사업 등 정부 사업의 지자체 떠넘기기 ▦재정 조기집행 추진 등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특히 2009년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재정집행이 크게 늘면서 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선거로 당선된 단체장들의 각종 선심성 토목ㆍ개발사업과 홍보성 행사 남발이 재정 압박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자체의 주 수입원인 취득ㆍ등록세, 재산세 등 세수가 크게 줄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
지방재정이 부실해지면서 각 지방의 긴요한 SOC 사업들이 도중에 중단돼 방치되고, 긴급한 사회복지서비스 사업이 취소되는 등의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전북 군산시의 한 관계자는 "가용 재원이 없어 지난 2년간 신규 사업을 단 한 건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지자체가 대형 개발사업을 산하 지방공사로 떠넘겨 재정악화가 지방공사로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전국 51개 지방공사의 부채는 46조원으로 연간 이자만 1조원에 달한다. 일부 지방공사는 파산 직전에 몰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경제학과)는 "지자체의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선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의 세율을 높이고, 국세 세원의 일부를 지방으로 이전해주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류호성기자 rhs@hk.co.kr
■ 전임자 '실패한 사업' 뒤치다꺼리… 주민들에 '빚 덤터기'
지난달 28일 수도권의 대표적 관광지인 인천 중구 월미도. 국내 최초의 도심형 모노레일인 월미은하레일이 서해 바다를 배경으로 썰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상 8m 높이 교각 위에 레일만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정작 그 위를 달려야 할 전차는 보이지 않았다.
경인선 인천역을 출발해 월미도 일대를 순환하는 6.1㎞ 노선의 월미은하레일은 완공 2년이 다 되도록 운행은커녕 도심의 흉물로 남아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2009년 7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시험 주행에서 차량 이탈과 추돌 등 안전성 문제가 제기돼 개통이 세 차례 연기됐고, 시행사인 인천시 산하 인천교통공사는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현재 시민검증위원회가 조사하고 있지만 시는 사실상 철거 방침으로 정하고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업비 853억원에 철거비 250억원을 합하면 혈세 1,100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가게 된 셈이다. 상당수 인천시민들은 "전임 시장의 잘못된 정책 판단이 빚어낸 결과"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초 인천시가 의뢰한 '관광전차 타당성 검토 용역'에서는 노면전차 방식이 최적이란 결과가 나왔으나, 2007년 2월 안상수 시장은 돌연 7~18m 높이의 모노레일 방식으로 바꿀 것을 인천교통공사에 지시했다. 사업비도 두 배 가량 늘었다. 안 시장은 "인천세계도시축전(2009년 8~10월)을 위한 구도심 볼거리 제공 등 관광인프라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강원 평창의 국내 최대 종합휴양시설인 알펜시아 리조트 개발 사업도 전임 단체장의 무리한 사업 추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초 의도는 좋았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2005년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세계 최고의 휴양지를 짓겠다"며 알펜시아 리조트 사업을 시작했다. 평창군 용산리와 수산리 일대 489만2,560㎡에 고급 빌라와 호텔, 골프장, 스키점핑타워 등을 조성하기로 하고, 강원도 한해 예산의 절반 가량인 1조6,0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부동산 침체로 엄청난 예산만 낭비하고 실패했다. "시장성과 자금 조달 여건 등을 내다보지 못한 주먹구구식 행정이 가져온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산골짜기에 한 채에 20억원이 넘는 최고급 골프 빌리지를 건설하겠다고 했으나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주말을 제외하고 관광객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하루 이자만 약 1억원에 달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사업시행사인 강원도개발공사 관계자는 "사업비의 60%를 건지는 수준에서 전체 매각도 검토 중이지만 사겠다는 기업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28일 취임한 최문순 지사는 "외국자본 유치 등을 통해 알펜시아 리조트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사업비 2,869억원 규모의 경기 화성시 화성종합타운 건설사업은 심각한 지방재정 위기의 상징이다. 2009년 4월 착공한 종합타운은 당초 올해 1월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공사 중단 등으로 준공이 지연되고 있다. 막대한 사업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관련법상 화성시의 적정한 경기장 규모는 1만5,000석, 하지만 화성시는 이 기준을 2배 이상 초과한 3만5,000석의 경기장을 지으면서 국비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11년에만 739억원의 예산이 부족한 상태다. 화성시의회 관계자는 "2005년에서 2010년까지 재임한 최영근 시장이 치적을 쌓기 위해 무리한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했다"면서 "그 결과 화성시는 매년 부채가 급증하는 등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고 말했다.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관계자는 "무리한 사업, 세금낭비 등 재정 파탄을 야기한 원인과 책임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면서 "다른 지자체들도 비슷한 상황인 만큼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심 공약들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망가뜨리는 주범 중 하나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공약이다.
이들 공약은 당선을 목적으로 급조돼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임기 중에 서둘러 추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전 타당성 검증이 부실해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나 완료 후에도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전철은 선심성 사업의 대표격이다. 1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전국 11개 자치단체가 경전철 사업을 진행 중이다. 모두 17개 구간에 총 연장이 243.7km인 이 사업을 완공하려면 15조원의 혈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치단체의 재정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돼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는 2005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7,287억원을 들여 경전철 공사를 마쳤으나 개통이 무기 연기된 상태다. 개통 후 매년 20억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적자 보전 방안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올 하반기 이후 개통을 앞두고 있는 부산ㆍ김해와 의정부의 경전철도 연간 최소 20억원 이상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는 최대 30년간 시행사에 수익을 보장해 주기로 계약을 맺어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할 판이다.
특히 면밀한 사전 검토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추진돼 강원 태백시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오투리조트와 안전체험테마파크는 선심성 공약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ㆍ27 재보선에서도 선심성 공약이 난무했다. 최문순 신임 강원지사는 선거기간 동안 10조원대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2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 공약을 쏟아냈다. 임기 내 5,000억원의 별도 복지재정을 확충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또 연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양양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증설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경남 김해을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은 김해 테크노밸리와 제2산업단지 조성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진장철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번 재보선의 경우 중앙당의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면서, 국비를 지원 받아 추진한다고 해도 자치단체의 재정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공약이 이전보다 많았다"고 분석했다.
춘천=박은성기자 esp7@hk.co.kr
■ 중앙정부 감세정책도 한몫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가 '3.22 부동산 대책'의 하나로 추진한 주택취득세 50% 감면 조치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지방세수의 30~50%를 차지하는 부동산 취득세가 절반으로 줄어들 경우 재정 운용상의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전국의 지방의회와 시민ㆍ사회단체들이 들고 일어났고, 결국 정부는 취득세 인하에 따른 지자체의 지방세수 감소분 전액을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지자체 예산담당 공무원 A씨는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려면 국세의 6%에 불과한 양도소득세를 감액하면 될 것을 굳이 지방재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세원을 건드려 재정운용을 뿌리째 흔드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직원 B씨는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방의 중요 세원을 조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는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이 곪아 터지고 있는 데는 중앙정부의 일방통행식 감세정책과 그에 따른 지방교부금 축소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들에 따르면 잇단 감세정책의 영향으로 정부에서 지방에 내려주는 교부금이 최근 3년 사이 크게 줄었다. 충북의 경우 도와 12개 시ㆍ군의 지방교부금 총액은 2008년 2조 1,696억원에서 2009년에는 1조 8,468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조 7,266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방교부금이 계속 준 것은 종합부동산세제의 개편이 가장 큰 이유다. 또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세율이 인하된 것도 한몫 했다.
지방교부금이 줄어 복지ㆍ문화 분야나 주민 숙원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지자체들은 세원을 따로 발굴하거나 지출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행정수요 때문에 지방채에 손을 대고 빚더미에 앉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정부의 부동산취득세 감면 조치를 놓고 지자체들이 강력 반발한 배경에는 이런 절박한 사정이 깔려있다.
충북발전연구원 김덕준 박사는 "중앙정부가 지방의 재원을 동의 없이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자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세감면 정책들이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과감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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