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진행되어 온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토론이 이제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주제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얼마 전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여 대기업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공개적으로 주주의 권한을 행사하게끔 하는 것은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라고 대응하여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연기금의 주인은 국민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아마 시민단체 등 재야의 반응도 유사한 것 같다. 재계와 재야의 반응 모두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새로운 관치를 불러오리라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특히 투자 규모가 가장 큰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므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기업들의 인사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정부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이러한 관치가 가져올 최종적 효과에 대해서 우려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재계는 동반성장 등의 명분아래 기업의 이윤을 강제적으로 분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고, 재야는 아마 관치를 통해 낙하산 인사가 심해질 가능성을 보다 더 우려하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재계 측에서도 주주권의 적극적 행사에 반대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주주권의 공개적인 행사를 환영할 수 있을까? 시장경제에서 주주권의 행사는 물론 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주주들은 과연 어떤 식의 주주권 행사를 바라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기업의 주식에 투자를 할 때는 그 투자로부터의 수익률이 높기를 바란다. 즉 내가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산다면 나는 그 회사가 당장 돈을 많이 벌어 배당금을 많이 주고 또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커서 주식 값이 올라가기를 바란다. 가상적으로 내가 투자한 회사의 사장이 그 회사의 이윤을 협력업체들과 나누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만일 그런 제안을 한 직후에 그 사장의 연임에 대해 주주들이 투표한다면 그 사장이 연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막론하고 주주들의 목표는 투자로부터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지, 협력업체와의 이윤 공유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주식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의 시야는 짧기로 유명하다. 대주주가 아닌 일반 투자자들은 자신의 투자 대상이 당장 높은 배당금을 주거나 빨리 주식 값이 올라 그것을 팔고 이익을 챙기기를 바라지, 오랜 세월 후에 협력업체와 동반성장하여 그 과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일 연기금의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되 주주들의 의사를 정직하게 반영한다면 적어도 주주권의 행사가 동반성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루어 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 측에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의 이윤 공유를 기대하고 있다면 결국 정부는 연기금의 주인인 국민들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길들이기 사용 부적절
이 점에서 정부의 접근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서민들이 노후를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할 여유가 없는 것을 고려하여 그들을 위해 강제로 저축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으로 모아진 돈은 보다 수익성 높고 또한 안전한 자산에 투자를 하여 나중에 서민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이 돈은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에 협조하지 않는 대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이 물론 동반성장이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반성장이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그를 얻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적절치 못하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