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황사의 울타리 없는 감옥에 갇혀 지냈다. 하늘과 땅의 뿌연 가시거리에 자꾸 아뜩해졌다. 중국 몽골 어디선가 날아온다는 저 황사는 나에게 여전히 혼돈이다. 좌표를 잃어버린 무질서의 카오스. 그해 5월 후배가 수감된 마산교도소가 보이는 언덕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그때도 황사바람이 불었다.
종이비행기는 황사의 무게에 눌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자주 추락했다. 역사마저도 어디로 이륙할지를 모르던 1980년이었다. 황사 속에서 군홧발 소리를 들었다. 요란한 총소리를 들었다. 교문 앞에 총을 든 계엄군이 진주했다. 탱크까지 몰고 온 계엄군의 눈빛 속에서도 핏빛 황사가 날렸다.
황사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던 시절, 황사는 하늘을 덮는 조곡이었다. 황사 속에서 러시아 민요를 불렀다. 그 민요의 제목이 '볼가 강 뱃노래'였던가, '스텐가라친'이였던가. 나는 시인이기보다 조국의 혁명가이고 싶었다. 혁명부대의 이름 없는 소총수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조국으로 가는 길을 모르던 시절, 황사가 불었다.
황사 속에 서면 그 길이 있을 것 같았지만 황사가 남기는 것은 뿌연 고뇌였다. 흑백다방에서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을 신청해 놓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읽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었다. 희랍인 조르바이거나 독립혁명가 김산이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활주로를 잃은, 찢어진 종이비행기였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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