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세에 브레이크가 없다. 이번엔 원ㆍ달러 환율이 1,070원선마저 뚫렸다. 외환당국은 "더 이상 과도한 하락(원화 절상)을 용인하지 않겠다"며 시장을 압박해보지만, 온통 환율 하락 요인 뿐인 환경과 맞서기는 상당히 벅차 보인다. 시장에서는 "우리 외환당국이 글로벌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미국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버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환율, 하락이 대세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개장과 함께 1,070원이 붕괴되면서 전날보다 6.5원 하락, 1,065원에 마감했다. 2008년 8월25일(1,064.1원) 이후 32개월여만에 최저치.
이날 시장에는 온통 원화 강세 재료뿐이었다. 전세계적 달러 약세 기조는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고, 증시로는 외국인 자금 유입이 확대되면서 주가가 다시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환율이 하락하면 타격을 입을 거라던 수출도 호황을 지속하면서, 4월 무역수지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대규모 흑자(58억달러)를 기록한 상황. 이 또한 달러 유입 지속으로 환율 하락을 더 부추길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이날 개장 전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선물환 매도가 쏟아진 것도 이 영향이 컸다. 소비자물가가 4개월째 4%대 상승률을 보이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으로 이어진 것이나, 알 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조차도 환율 하락의 재료가 됐다.
문제는 이런 요인들 대부분 상당기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는 점. 시장에서는 당분간 환율 하락 흐름을 저지할 요인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외환은행 김성순 차장은 "당분간 미국의 저금리,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글로벌 달러 약세 등의 흐름이 바뀔 요인은 없어 보인다"며 "이제는 원ㆍ달러 환율이 1,050원까지 떨어지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버냉키와의 싸움
급락하는 환율에는 투기적 요인도 강하게 끼어 있다는 것이 외환당국의 인식. 지금까지는 물가를 우려해서 환율 하락을 용인했으나, 최근에는 외환당국 진용 개편과 함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이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최근 원화 강세는 일방적이며 속도가 빠르다. 최근 NDF 거래는 상당 부분 환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거래로 판단된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당국의 개입에도 불구, 원ㆍ달러 환율이 상승하기는커녕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최 차관보 발언 시점은 버냉키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초저금리 기조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을 시사한 직후. 버냉키 의장은 특히 지난 주말에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가진 연설에서 "미국 경제회복은 아직 멀었다"며 달러 약세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 외환당국이 버거운 상대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환율 하락속도를 둔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방향 자체를 돌려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농협선물 이진우 팀장은 "시장 환경이 환율 상승으로 돌아설 즈음에 당국이 개입을 해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데, 이번에는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 등과 맞물려 개입 타이밍을 잘못 잡은 측면이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무리하게 방향을 돌려세우려고 한다면 역효과만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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