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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씨 새 장편소설 '꺼져라, 비둘기' 이 소설, 진심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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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씨 새 장편소설 '꺼져라, 비둘기' 이 소설, 진심은 뭘까?

입력
2011.05.0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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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아이스크림을 사먹다 아빠에게 혼쭐이 나곤 하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가게가 일종의 유토피아라 하자. 어느 날 아빠가 그 백일몽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아이를 데려간다. 너 먹고 싶은 대로 맘껏 먹으라며. 정작 아이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정말 덥석 먹어도 되는 걸까. 바랬던 일이건만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빠의 진심은 뭘까.

김도언(39)씨의 신작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읽고 난 뒤의 기분이 딱 그 짝이다. 요즘 소설은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고 느낄 독자들에게 소설은 시치미 뚝 뗀 채 쉽고 친절하며 착하디 착한 이야기를 던진다. 너무 노골적이고 뻔뻔해 어리둥절할 정도로. 액면 그대로 몰입해도 되는 것일까.

“언젠가 한번쯤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친절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 소설은 첫머리에 등장인물의 성격과 내력을 상세히 소개하고 단락마다 소제목을 달아 이야기의 흐름을 요약 제시한다. 과잉 친절이다 싶게. 인물도 복잡할 것 없이 ‘착한 우리편’과 ‘나쁜 너네편’이 분명히 갈려 착한 편이 고통받다가 정의의 칼을 들어 나쁜 편을 내쫓는 내용. 앞서 두 권의 장편과 세 권의 소설집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내밀한 욕망을 천착해 왔고, 세상이 더 이상 투명하게 착해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작가가 대체 무슨 수작을 거는 것일까.

표면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 시골 마을에 타이어 공장이 들어서 소란해지고 비둘기떼들도 몰려오면서 마을의 평화는 무너진다.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무법자처럼 질주하고 비둘기가 싸지르는 똥으로 거리는 더러워지는데 그 덕에 세탁소 목욕탕 음식점은 호황을 누린다. 짐작되듯 나쁜 편은 이 탐욕스런 가게들의 주인들. 반대편은 촉망받던 씨름 선수였다가 사고로 바보가 되는 이산, 정의심에 불타는 시인인 영만, 영만과 순결한 사랑을 나누는 유실래 등 약자를 연민하는 이들로 종내 악덕의 인물들과 비둘기를 마을에서 몰아낸다. 이 자체만으로 일견 현대 문명의 비열한 욕망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로, 즉 라는 제목처럼 평화로 위장한 비둘기가 탐욕의 덩어리임을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이산과 영만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러나 착한 편을 착하다고 시종 드러내고 나쁜 편을 한없이 몰염치한 인물로 그리는 단선적 이분법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말하자면 이 소설의 이상한 지점이다. 이를테면 ‘민주와 반민주 구도’를 선악 대립으로 수십 년간 지속하는 정치인들의 구호가 영악함을 감춘 클리세로 다가오는 것처럼.

시인 영만이 유실래에게 운명적 사랑을 속삭이거나 스님이 이들을 불이(不二)의 사랑이라 칭송하는 대목은 낯 뜨거울 정도인데 이야기 전체가 이를테면 연민 사랑 정의에 대한 패러디로 읽히기까지 한다. 순진한 화자인 이산이 후반부에 심성을 고분고분 길들이는 약을 먹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산의 진술 자체도 의심스러워진다.

이 야릇한 소설의 의도가 슬쩍 드러나는 곳은 중간과 끝 부분에 배치된 ‘소설밖에 모인 사람’이란 실험적 공간이다.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작가에게 일방적 서술을 따지고 작가는 액면의 이야기가 철저히 프로그래밍된 것이며 세상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내비치는 것.

요컨대 소설은 연민의 약자들이 뭉쳐 현대 도시 문명의 탐욕을 내쫓는다는, 분명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착한’ 내용을 그린다. 그러나 선악의 구별이 간단찮은 현실의 문맥에서 이는 클리세가 되고 소설은 기꺼이 그 늪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 명료한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상념이 복잡해지는 것도 바로 이 접점에서다. 착한 올바름이 진부한 까닭은 이미 우리가 회복 불가능한 병에 걸렸기 때문일까. 뻔뻔하게 내미는 선(善)은 왜 잡기 꺼림칙할까. 소설은 그러니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자,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왔으니 맘껏 드셔 보시라고.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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