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주민에게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같은 탈북인으로서 일종의 사명이죠.”
서울 종로구 적선동 경복궁 인근에서 10년째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석영환(46) 원장이 관내에 사는 탈북주민들의 주치의로 나섰다. 석 원장 역시 1998년 부인과 함께 북한을 빠져 나온 탈북자 출신.
그는 지난달 26일 탈북 주민에게 건강검진을 무료로 제공하고 외래진찰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협약을 종로경찰서와 맺었다. 한방치료 중 침술은 의료보험처리가 되지만 한약 등은 본인부담금이 커 탈북자들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석 원장의 배려로 종로구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15명은 비용 부담 없이 한방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석 원장은 사실 협약을 맺기 전부터 북한이탈주민에게 의술을 베풀어왔다. 특히 북한에서 탈출해 바로 남한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이 석 원장의 병원을 찾아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돌아갈 정도로 탈북자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석 원장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돈을 받을 순 없다”며 “또 남한 사회에 정착해서도 대개가 어렵게 사는 형편이라 웬만해선 무료로 돌봐드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이 석 원장의 병원을 많이 찾는 이유는 단지 무료여서 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픈 몸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기 때문. 석 원장의 병원을 찾는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의 향취를 느낄 수 있어 한결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석 원장은 “북한과 남한의 한방치료 방식이 달라 주민들이 느끼는 만족감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남한은 가늘고 얇은 침을 사용하는데 비해 북한의 한방치료는 굵은 침을 깊게 넣는 식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많이 시달리는 질병은 만성위장염. 석 원장은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옥수수 등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 북한주민의 위장상태는 최악”이라며 “물도 전혀 삼키지 못할 정도로 소화기능이 마비된 탈북자가 있었는데 침 치료를 시작한 뒤로 식사까지 할 수 있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탈북 후 경희대 대학원에서 한의학 석사를 받은 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석 원장은 “탈북인 대상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공부를 마친 후 탈북주민들이 맘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