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가 절묘했다. 연초부터 불을 지핀 아랍권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테러의 대부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알케에다와의 전쟁을 체제 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권위주의 정권의 입지를 위축시킬 전망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보복테러가 기승을 부려 아랍국의 독재자 축출이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빈 라덴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제거된 후 미국 대테러 정책의 주된 타깃이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이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게 탐탁치 않았던 것도 바로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장 빈 라덴의 사망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퇴진 거부 명분은 상당 부분 힘을 잃게 됐다. 지금까지 살레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의 퇴진 요구가 거세질 때마다 알카에다의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왔다. 예멘은 최근 알카에다의 테러활동이 가장 활발한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있는 곳이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조차 "유약한 지도자가 예멘의 차기 정권을 잡을 경우 미국의 대테러 전략에 실질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살레를 두둔했다. 카다피 역시 시위 초기 "반정부 시위는 청년들이 알카에다가 준 약을 먹고 부리는 소동"이라며 알카에다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현재 대테러전쟁의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파키스탄은 최근 미국의 입김을 축소키려는 입장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파키스탄의 핵물질이 알카에다에 흘러들어 갈 것을 우려해 무인정찰기를 이용한 공습을 주도해 왔으나 잦은 오폭이 문제가 됐다. 미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사실상 해체상태에 이르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때문에 "CIA 요원들을 철수시키라"는 파키스탄의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알카에다의 아랍권 내 영향력 유지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철저하게 점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운영 특성과 변화무쌍한 전술 덕분에 빈 라덴이 없어도 조직 자체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알카에다는 최상위 지도부를 정점으로 지원, 잠복, 작전 등 단계적 지휘체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유튜브 등 첨단기술의 활용 ▦다양한 테러 방식 개발 ▦중동 외 지역으로의 세력 확장 등 서방의 허점을 파고드는 임기응변 능력도 뛰어나다. 지난해 11월 예멘 미국행 화물항공에서 발견된 소포폭탄이나 AQAP 지도자 안와르 알올라키의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350만회에 달한 것 등이 그런 사례다.
특히 소말리아의 알샤바브, 이라크의 이라크이슬람국가(ISI), 북아프리카의 이슬람마그레브알카에다(AQIM) 등 사하라사막을 중심으로 알카에다의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사실은 테러와의 전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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