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김연아(21ㆍ고려대)는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설 새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쇼트프로그램은 발레곡 ‘지젤’, 프리스케이팅은 ‘오마주 투 코리아’였다.
처연한 발레리나로 분할 지젤도 관심을 모았으나 프로그램명에 ‘코리아’가 들어간다는 점만으로도 오마주 투 코리아는 화제만발이었다. 김연아 측은 ‘아리랑’ 등 한국 전통 음악을 편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아는 2006~07시즌 시니어 데뷔 후 ‘종달새의 비상’, ‘미스 사이공’, ‘세헤라자데’, ‘피아노 협주곡 F장조(조지 거쉰)’ 등 클래식한 곡들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조국에 바치는 경의는 김연아가 국제무대를 호령하면서 항상 머릿속에만 넣어뒀던 계획. 지난해 2월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해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선수권)을 달성하면서 마침내 생각을 얼음 위로 불러내기로 마음먹었다.
김연아를 있게 한 조국에 대한 감사, 오마주 투 코리아는 30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드디어 전세계에 공개됐다. 지난해 8월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전 코치가 사전 동의 없이 인터뷰에서 발설해 논란이 일기도 했던 바로 그 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 음악감독 지평권씨와 미국 영화음악 작곡가 로버트 베넷이 편곡한 아리랑의 감동적 선율은 도입부부터 숙연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리랑은 후반부에서는 역동적이고도 장엄한 리듬으로 재등장했다. 김연아는 이에 맞춰 코리오 스파이럴(Choreo Spirals) 연기를 펼쳤다. 양 팔을 벌린 채 한 발을 들고 나비처럼 얼음을 지치는 김연아의 모습에 잔잔한 박수가 흘렀다. 김연아는 아리랑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은 코리오 스파이럴에서 3.43점을 받았다. 기본점 2.00점에 가산점이 1.43점에 이르렀다. 장기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점프(가산점 1.60점) 다음으로 높은 가산점이었다.
검은빛과 은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의상은 넘실대는 한국의 강산을 그대로 담았다. 그동안 아이스쇼에서 김연아의 의상을 만들어 왔던 이상봉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김연아는 연기를 끝낸 뒤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 자신을 끊임없이 응원한 국민에게 바치는 감사의 무대였기에 약간의 실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김연아는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이미지를 전달할지 고민했고 한국 동작을 넣기보다는 음악과 함께 팬들을 향한 감사를 전하려 했다”면서 “이번에 완벽하게 끝내지 못해 아쉽지만 앞으로 보여 드릴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2010~11시즌이 이번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마무리돼 김연아는 공식 대회에서 오마주 투 코리아를 연기할 기회는 더이상 없다. 그러나 아이스쇼(6~8일 잠실실내체육관) 등에서는 얼마든지 다시 연기할 수 있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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