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에 걸친 치밀한 정보전이 만들어낸 개가였다. 미 특수부대가 1일 새벽(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성명이 나오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누구도 예상키 어려웠다. 백악관 취재진은 불과 몇시간 전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밤 늦게 "중대한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달받았을 뿐이다. 백악관 고위관리는 "동맹국들에게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며 "백악관 내에서 사전 통보를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말했다.
작전이 최종 승인된 것은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집중됐던 지난달 29일.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오바마 대통령은 리언 파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생포 또는 사살" 작전을 재가했다. 이틀 뒤인 1일 새벽 1시15분께 특수부대와 CIA 요원으로 구성된 "매우 적은 수"의 급습이 개시됐다. 투입된 요원은 20~25명으로 미 해군특전지원단(네이비실)이 중축인 것으로 알려졌다.
ABC방송에 따르면 투입된 요원은 네이비실의 '팀6'로, 이들은 미국 내에 빈 라덴 아보타바드 은신처와 똑같이 만들어진 시설물에서 이날 공격을 연습했다. ABC방송은 급습 작전에 CH47 헬리콥터 두 대가 이용됐으며, 한 대는 작전 중 피습됐으나 미군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피습된 헬기를 폭탄을 이용해 현장에서 파괴했다.
교전은 40여분 만에 끝났다. 은신처 밖의 알카에다 요원들을 제압한 미 특수부대원들은 건물 안으로 진입하자 바로 빈 라덴과 마주쳤다. 한 요원이 빈 라덴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항복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평소 "살아서는 절대 체포되지 않겠다"던 빈 라덴의 저항은 완강했고, 결국 총격전 와중에 사살됐다. 빈 라덴의 아들을 포함한 남성 3명과 인간방패로 활용된 여성 한 명도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로이터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작전은 처음부터 사살 명령만 받았을 뿐 생포할 의도는 없었다고 익명의 미 안보관료가 밝혔다. 빈 라덴은 예전부터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각지의 알카에다 조직은 자체적으로 활동해온 만큼, 생포의 실익보다 큰, 사살의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고유가 등 악재에 허우적대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단기간에 뛰어오르게 됐다"고 보도했다.
작전팀은 사살 즉시 그의 시신을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기지로 옮겨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빈 라덴의 안가에 대해 미 고위당국자는 "예상했던 것과 전혀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견고함은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이 빈 라덴의 행적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얻은 것은 지난해 8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모하메드의 과거 심복이 빈 라덴과 거처를 같이 한다는 진술을 끌어내면서 빈 라덴 제거작전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모하메드는 9ㆍ11 테러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빈 라덴의 최측근. 이후 극비리에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보팀 회의가 5차례 소집됐다. 수개월 동안 진술의 진위를 확인하고 심복의 행적을 쫓는 지난한 첩보전을 벌인 끝에 빈 라덴의 거처를 확인한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작전 OK' 사인을 내렸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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