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공원 벤치 대부분은 화단 안으로 쑥 밀려들어가 있다. 벤치는 나무 널빤지 몇 개가 간결하게 연결돼 있다. 반면 한국 공원 벤치 대부분은 길가에 놓여 있다. 손잡이로 1인당 앉는 자리도 구분돼 있다. 사람들은 어떤 벤치를 더 편안하다고 할까.
핀란드에서 17년째 디자이너 겸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안애경(53ㆍ소노안 대표)씨가 답했다. “한국 공원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정강이를 툭툭 차게 되죠. 그뿐인가요,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손잡이는 노숙자는 물론이고 쉬고 싶은 시민들도 누울 수 없게 합니다.”
그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에 관한 책 (시공사 발행)을 냈다. 책은 이케아 섹토디자인 피스까스 마리메꼬 등 유명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를 다룬다. 무엇보다 안씨는 책에서 이들 디자인에 깔린 정신과 철학을 소상히 전달한다.
“북유럽 디자인은 사람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어요. 노르웨이 디자이너 피터 옵스빅은 줄을 튕겨서 연주하는 악기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가 탄력성을 갖도록 만들었죠.” 즐겁고 편안한 것을 먼저 고려하는 자세에서 훌륭한 디자인이 나온다는 얘기다.
북유럽 사회 곳곳에서 맞닥뜨린 공공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안씨는 “특정 공간에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공간을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사람들이 그 공간에 참여해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공공디자인이에요”라고 했다. 가령 한 겨울 꽁꽁 언 바다에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 썰매를 타는 풍경 등이 그 자체로 공공디자인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북유럽 디자인은 자연 환경이나 문화권 안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정신적 가치와 철학이 디자인에 담겼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북유럽 디자인 열풍은 우리가 우리 것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밖에서 그것을 찾고자 하는 현상에서 나왔죠. 하지만 우리의 전통을 되살려 현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어간다면 북유럽 디자인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할 겁니다.”
한편 그는 현재 핀란드에서 ‘한국의 디자인_전통과 현대(Korean Design_Between tradition and modernity),라는 제목으로 헬싱키 디자인박물관에서 나전칠기 한지 도예 등 한국 작품 12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강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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