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성조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며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각 도시의 표정은 축제를 방불케 했다. CNN은 "'USA!'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밤 공기를 꽉 채웠다"고 흥분된 분위기를 전했다.
워싱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1일 밤 11시30분 빈 라덴의 사살을 공식 발표하기 전부터 시민들이 백악관 앞 도로를 채우기 시작했다. AP통신은 "모든 크기의 국기가 하늘에 내걸렸다"며 "좀 더 좋은 자리에 국기를 걸기 위해 나무나 가로등을 기어오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에서 유행한 부부젤라를 불며 흥을 돋우는 젊은이도 있었다.
메이슨 라이트(33)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희생된 수천명에겐 마침내 비극이 마무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백악관 앞으로 나온 알란 코마(29)씨는 "반드시 어떤 곳에 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는데, 지금 이곳이 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9ㆍ11 테러의 최대 표적이었던 뉴욕의 분위기는 더 뜨거웠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그라운드 제로'에 모여 기쁨을 나눴다. 테러 당시 343명의 순직자를 낸 뉴욕 소방관들도 거리의 인파에 섞여 있었다. 테러의 후유증으로 폐 질환을 앓다 은퇴한 전직 소방수는 소감을 묻는 CNN기자의 질문에 "전쟁에서 막 승리한 것 같다"며 "사망한 동료들에게 정의가 실현됐음을 알리기 위해 여기 왔다"고 대답했다.
빈 라덴의 사살을 반기는 것은 무슬림 밀집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AP통신에 따르면 아랍인 거주지역인 미시간주 데어본시에서도 소규모 군중이 시청 앞에 모여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 도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모하메드 코베이시는 "희생자들에게 마침내 정의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빈 라덴 사살에 흥분한 미국민의 반응은 재선 캠페인을 막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유가 상승 등으로 고전하던 오바마가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며 "선거의 '내러티브(서사 구조)'가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과정에서 이라크에서의 철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작전에서 진전을 이룰 것을 약속했는데, 빈 라덴 사살로 정치지도자로서 신뢰를 얻게 됐다.
공화당의 대선 예비 후보들은 작전 성공을 환영하면서도 "빈 라덴이 사살되기까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기울인 노력이 잊혀져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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