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5년 회사에서 파면된 A씨. 부산에 살던 그는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내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회사 본사의 주소지가 서울 강서구라 관할 법원이 서울남부지법이었기 때문. A씨는 재판 참석, 소송자료 제출 등을 위해 몇번씩 법원을 오가야 했다. 1심 승소 소식에 하루빨리 판결문을 보고 싶었지만, 사흘이나 기다려야 했다. 우편으로 판결문이 송달되려면 통상 3~4일은 걸렸기 때문이다.
#2. 2011년 5월. 서울에 사는 B씨는 회사 업무와 관련해 대구에 있는 C사와 분쟁이 생기자 관련 소송을 담당하게 된다. 관할 법원은 피고 C사가 있는 대구지법. 그러나 대구에까지 내려갈 필요가 거의 없다. 전자소송 제도 덕분에 소장 접수는 물론 준비서면이나 증거자료도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대 업체의 답변서나 판결문도 온라인으로 실시간 열람, 출력이 가능하다.
전체 법원 재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민사사건 재판에서도 2일부터 전자소송 제도가 전면 시행(시ㆍ군 법원 제외)된다. 지난해 4월 특허사건에 처음 도입된 데 이어 민사사건으로 제도가 확대됨으로써 '종이 없는 재판' 시대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전자소송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소송 과정에서 시간적ㆍ공간적 제약에 따른 불편함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전자소송 홈페이지(ecfs.scourt.go.kr)를 통해 소송 관련 서류를 문서파일 형태로 제출ㆍ열람ㆍ송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상대방이 낸 자료들을 확인할 때에도 지금처럼 법원에서 대기하거나 우편 송달을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판 참석 일정을 제외하고는 법원을 직접 찾을 일이 거의 사라진다.
재판 시간도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법정에서 전자문서 파일을 스크린에 띄우고 프리젠테이션으로 변론을 진행할 수 있게 돼, 두툼한 서류 뭉치를 읽는 데 드는 시간이 절약된다. 보다 효율적인 재판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특히 법원은 비용 절감과 친환경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전자소송 제도가 완전히 정착되면 소송 관계인의 법원 방문횟수 감소에 따른 교통량 감소, 종이 절약 등으로 2009년 한 해 동안 접수된 민사사건 113만3,981건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약 7,594톤의 탄소배출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
전자소송 제도 성패의 관건은 소송 당사자들의 호응도. 시행 1년이 된 특허법원의 경우 전자소송 접수 비율이 47.9%(사건 1,061건 중 508건)에 달했고, 원고와 피고 중 어느 한쪽이 전자소송을 택한 비율은 무려 79.5%(844건)에 이른다. 성공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특허재판과 민사재판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민사재판에서도 전자소송이 금세 활성화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실제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9%(101명 중 60명)이 "전자소송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변호사나 중소 로펌 소속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전자소송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기류도 있다.
보안 문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최근 현대캐피탈, 농협 전산망 사고로 나타났듯 전산망 보안 분야는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감한 개인 정보나 사생활 자료, 또는 기업의 영업정보 등이 기재된 소송 자료가 해킹 등으로 유출될 경우 커다란 파장이 일 게 뻔하다. 때문에 법원도 보안에 특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7단계의 보안 절차를 마련하는 등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2년 5월부터 가사ㆍ행정ㆍ도산 사건, 2013년부터는 신청ㆍ집행ㆍ비송 사건으로 계속 전자소송 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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