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도 이제 '주총 거수기'에서 벗어나 주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1주 1의결권'이라는 자본주의 논리에 지극히 합당한 이 명제에 재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26일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대기업을 견제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곽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2대 주주(5.0%)로서 보유지분이 이건희 회장(3.38%)보다 많다"고까지 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연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연금 사회주의'"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기금 주주권'이 무엇이길래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주는 자신이 가진 지분만큼 의결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도 경영진이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판단을 할 경우 연대해 주총에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연기금도 오래 전부터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후가 걸린 연기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는 제1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캘퍼스)이 대표적. 캘퍼스는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82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갖고 있다. 주주 제안은 물론 주주 집단소송에도 대표로 적극 참여한다. 유럽의 연기금은 주가 상승보다 중장기적으로 기업이 사회책임을 다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어 주주권리를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국내에서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이는 일차적으로 국민연금이 정부에 의해 운영되므로, 기업 경영에 정부가 간섭할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이를 정교한 의결권 행사지침 마련과 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소수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마치 대부분의 지분을 가진 것처럼 경영권을 장악해 온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기업들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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