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설쳤다. 새벽 5시가 막 지났다. 적막한 시간이 낯설어 우두망찰하다가 혹시나 하고 내다보니 벌써 신문이 와 있다. 할 일이 생긴 게 반갑고 이 새벽에 다녀간 부지런한 배달원이 고마워서 평소보다 꼼꼼히 신문을 읽는 사이 창 밖이 희붐해졌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신문 부자였다. 명절이나 제사 때만 고기 구경을 할 만큼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는데도 아버지께서는 늘 대여섯 개의 신문을 보셨다. 조간과 석간, 경제지를 두루 챙기고 형편이 좋을 때는 어린이신문까지 봤으니 우리처럼 신문 호사를 누린 집도 드물었다.
아침저녁 신문이 오면 나는 어른들 옆에서 목을 빼고 있다가 다 읽은 신문을 넘겨받자마자 연재만화와 소설 따위를 챙겨보았다. 가끔 어른시늉을 내느라 정치면을 들추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재미가 없어 오래 읽지 못했다. 대신 그런 이야기는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께 들었다. 아버지는 밥을 먹으며 그날의 시사를 논하고 자식들이 사회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하기를 즐겼다. 늘 기사를 씌어진 그대로 읽지 말라고, 행간을 읽으라고 강조하셨다.
일본제국주의에 이어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겪은 아버지였다. 서울을 사수한다던 정부는 몰래 떠나고 그 말을 믿은 시민들만 남아서 고생하다 나중엔 용공분자니 뭐니 곤욕을 치른 전쟁의 역사도 있었다. 행간을 읽는 아버지의 독법(讀法)은 그런 엄혹한 시대가 낳은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또한 그것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독법이요 작법(作法)이었다.
독자는 낱낱의 기사를 넘어 전체 맥락에서 의미를 읽고 문장 뒤에 숨은 뜻을 파악해 진실을 재구성할 줄 알아야 했고, 기자는 쉼표 하나 조사 하나에도 의미를 담아 행간이 살아있는 기사를 쓸 줄 알아야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텅 빈 광고를 게재한 동아일보 사태는 언론 탄압이라는 불행한 역사의 산물임과 동시에 행간을 읽고 쓸 줄 알았던 그 시대의 성취였다.
지난 며칠, 서태지의 비밀결혼 이야기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TV 주요뉴스로 보도되는 걸 보면서 행간을 읽는 그 시절의 독법을 떠올렸다. 유명 연예인의 숨겨진 사생활처럼 솔깃한 이야깃거리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연예통신도 아닌 언론에서 톱뉴스로 다룰 만큼 그것이 공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걸까. 연예인들이 나 모르게 결혼했다 이혼해서 내 정치적 권리를 침해했는가, 경제적 손해를 초래했는가, 아니면 방사능처럼 생존을 위태롭게 했던가. 이 모든 게 아리송한데 언론은 요란하니 자꾸 그 속내를 더듬게 된다.
그 소식이 전해진 날, BBK 관련 재판에서 법원은 검찰의 명예보다 공익을 위한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고 판결했다. 그 무렵 사용연한을 넘긴 고리 원전에서는 가동이 중단되는 사고가 잇달았고, 문제가 된 전원차단기를 공급한 현대중공업이 2년 전 부품 결함을 알고도 쉬쉬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4월 15일부터 나흘 사이 4대강 사업 현장에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으나 국토부 장관은 "사고다운 사고는 몇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들보다 비밀결혼 이야기가 재미있긴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뉴스의 경중을 가리는 기준이'공익'이 아닌 '재미'가 되었나. 심각한 뉴스보다 그 편이 정신 건강엔 좋을지 몰라도 한숨이 나온다. 과거엔 행간만 읽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드러난 뉴스 뒤에서 숨은 뉴스 찾기까지 해야 할 판이다. 글 쓰는 저자 노릇만 힘든 게 아니라 독자 노릇도 갈수록 고단한 시절이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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