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김수근 저
정말 잘 알고 익숙하다고 생각한 것들도 좀 더 깊은 생각을 갖고 오래 지켜보다 보면 '이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때론 전에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영감을 찾아 내기도 한다.
한국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1960년대~80년대 기고 모음집인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넓을수록 좋다> 는 도심에서 건축을 업으로 하는 필자에게 항상 새로운 영감을 주곤 한다. 좋은>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92년. 책엔 그의 60년대 기고도 들어 있으니 당시 기준으로도 30년전 관점의 구문투성일 것이란 생각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아직까지도 틈이 날 때마다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은 50년의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항상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29세 나이에 국회의사당 설계 당선을 시작으로 잠실 올림픽경기장까지 기념비적인 건축과 도시계획을 이끌었던 작가의 건축관을 통해 현대의 도시 건축물과 도시설계에 대한 올바른 방향감이 무엇인지 뒤짚어 보게 된다.
이 책은 그가 건축뿐 아니라 사회ㆍ문화 분야에서도 남다른 열정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의 기고엔 건축에 대한 이야기 외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사회적 이슈와 쟁점에 대한 시론,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의지들이 폭넓게 담겨 있다. 때로는 건축가로서 당시 개발정책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으며,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한 계승의식을 강조하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찾고 지켜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도시와 건축에 있어서도 자동차 중심의 쭉쭉 뻗은 고속도로보다는 사람 중심인 서울 북촌의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 더 좋은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 기반으로 쌓아 올린 아파트와 8차선 대로에 밀려난 우리의 한옥과 꼬부랑길들. 어쩌면 우리는 고가의 소장품을 분실하고도 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우리 고유의 정서와 도시미학이 5분전 분실한 공짜 휴대폰만 못한 것은 아닐는지.
하진영 파라스코프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