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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해방일기1' 일본 패망 몰랐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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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해방일기1' 일본 패망 몰랐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입력
2011.04.2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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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일기1 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발행·439쪽 2만1,000원

시인 서정주가 일제강점기 말에 열성적으로 협력했던 것에 대해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는 말로 변명한 일이 있다. 시인의 말은 솔직한 것이었을까.

<해방일기1> (너머북스 발행)을 쓴 역사학자 김기협씨는 "그런 변명이 통할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고, 실제로 꽤 통하는 것 같다"며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유시가 방송되던 시점에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꽤 오랫동안 이 상황을 예견,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해방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웬만한 사람은 해방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방 전에는 탄압 때문에, 해방 후에는 "그런 예견을 하고도 어째서 그에 따른 행동이 없었는가"라는 추궁 때문에 밝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방의 의외성을 과장함으로써 눈 가리고 아웅하는 풍조가 생겨났고, 지금까지도 이런 신화가 역사 인식의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45년 해방에서 48년 8, 9월 분단 건국에 이르는 과정을 하루하루씩 더듬어 보는 '해방일기'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다. 이번 책은 45년 10월 29일까지를 정리한 것이다.

6ㆍ25전쟁 당시 전쟁일기를 쓴 역사학자 김성칠이 저자의 부친이다. 저자는 부친이 쓴 형식을 흉내 내 65년 전 해방 후의 역사를 일기 형태로 하루하루씩 되살린다. 통상적 역사 서술 방법으로는 주제를 전개하기에 한계가 있고, 주관적 판단을 담을 수 있어 일기 형식을 택했다.

일본 항복 1주일을 앞두고 이뤄진 소련의 선전포고를 기회주의적 태도로 비난하기도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의 흐름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차 대전의 가장 큰 주인공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테헤란회담 당시 독일의 주력군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지킬 필요가 있었으며, 독일 항복 3개월 후 일본을 공격하기로 미국과 영국의 양해를 얻은 상태였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의 항복이 몇 주일만 더 늦었더라면, 일본에의 원폭 투하가 소련을 위축시키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일본 본토를 통째로 점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또 2차 대전에서 한국인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른 폴란드가 소련의 전후 구상 때문에 온전한 독립을 얻지 못한 사실을 들어 한국이 해방의 의미를 파악할 때 엄혹했던 당시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해방 공간에서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애쓴 사람들이 많았으나 소수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짓밟힌 이래 지금까지도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김구 이승만 김일성 박헌영 같은 별난 사람들의 모습에 가려져 있던 여운형 김두봉 김규식 안재홍 홍명희 같은 보통 사람들의 가르침을 전하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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