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린 시절부터 슈퍼마켓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꼭 협상을 했어요. 가격 흥정을 했던 거죠. 조금은 유별났던 성격이 협상 전문가로 성공하는데 밑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파악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차근차근 이뤄나갈 수 있을 거에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끈 미국측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28일 한국 여대생들의 일일 멘토로 나섰다. 이날 오전 성신여대를 방문한 커틀러는 '여성으로서의 경력과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행복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비법을 150여명의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커틀러는 한미 FTA 협상 당시 '검투사'라는 별명을 가진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와 1년5개월 동안 샅바싸움을 벌인 여장부. 순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내놓고 고래심줄처럼 버티기도 해 김 수석대표의 머리를 아프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커틀러는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느 나라나 쉽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20년 전 공직에 처음 입문했을 때 일본측 협상파트너가 제가 너무 젊고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어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분하고 속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렇지만 좌절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오기가 생겨 남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일했죠."
협상의 성패가 상대방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에 달려있음을 감안할 때 이날 커틀러가 밝힌 협상파트너 분석작업은 아주 심층적이다. 이를테면 협상에 임할 때 상대국의 소설이나 역사서를 읽는 식이다. 커틀러는 "한미 FTA 협상 때도 한국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고 이런 사전 작업이 한국의 문화나 정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커틀러는 일하는 여성이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비결도 소개했다. "많이 바쁘더라도 틈틈이 아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일과 가사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지만 아이의 미소를 보면 일하면서 겪는 고충도 한번에 다 날라가죠. 밖에서 열정적으로 일을 끝마치고 훌훌 털어버린 후 가정으로 돌아왔다면 이미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을 갖춘 겁니다." 실제로 커틀러는 2007년 2월 워싱턴에서 열린 7차 협상 당시 일곱살 된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우리측 대표단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커틀러는 학생들의 진로고민도 즉석에서 해결해줬다. 한 학생이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두렵다고 털어놓자 커틀러는 "늘 인생이 계획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해야 한다.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며 다독였다.
커틀러는 "열정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돈을 보고 직장을 택하기 보다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박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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