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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낯선 유럽을 배회하는 탈북자의 쓸쓸함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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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낯선 유럽을 배회하는 탈북자의 쓸쓸함을 찾아

입력
2011.04.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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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언어를 상실한 채 유럽을 떠도는 탈북자 L. 어머니의 시체를 팔아 마련한 푼돈 650유로를 품에 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스물 살의 북한 청년 로기완이다. 완벽한 이방인으로서 그가 느꼈을 생의 쓸쓸함은 어떤 것이었을까.

신예 작가 조해진(35)씨의 두 번째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창비 발행)는 한국 사회의 회로 바깥에서 배회하는 이 낯선 타자의 흔적을 쫓아가는 소설이다.

탈북자의 자취를 뒤쫓는 화자인 나는 방송작가로 그 역시 의도치 않게 일상의 회로에서 빗겨 나간 인물.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해 후원을 받는 TV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인 나는 출연자인 여고생 윤주와 인간적 관계를 맺지만 그만 의도치 않은 나의 욕심으로 윤주는 위험에 처한다. 후원금을 늘리기 위해 그의 사연 방송 날짜를 추석 연휴로 미뤘는데 수술이 연기된 사이 윤주의 종양이 악성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죄책감으로 연인마저 잃은 나는 우연히 잡지에서 본 탈북자 L의 사연을 읽은 뒤 벨기에로 떠나고 그가 남긴 일기를 구해 3년 전 그의 발자취를 되밟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소설의 빛나는 부분은 화자인 내가 탈북자 L의 여정을 다시 밟으며 그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가는 과정을 절제된 감정이입으로 섬세하게 그리는 대목. 덤덤한 듯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L의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을 묘사한 이런 대목처럼. "오후에 이곳으로 돌아와 로가 처음 한 일은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목까지 차올랐다는 느낌이 들면 로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저 어둠 속에서만 겨우 생존하는, 즐겁고 신나고 설레는 감각 같은 것은 모두 퇴화된 불우한 생명체처럼, (…)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무의식 저편으로부터 끊임없이 불안한 잠을 불러들였을 뿐이다"(105쪽). 이니셜 L에 불과했던 탈북자가 점차 함경북도 온성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 자란 로기완이란 인물로 구체화하는데 나는 이 로기완의 아픔을 연민하면서 자신의 아픔도 치유해 간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유럽의 탈북자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 조씨 역시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자에 대한 기사를 읽고 무작정 벨기에로 떠났다. "처음부터 뭔가 쓰겠다는 생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는 작가는 그곳 허름한 호스텔의 방문을 여는 순간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고 한다. L 역시 느꼈을 그 쓸쓸하고 추웠던 방이 "소설의 시작이고 끝이다"는 것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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