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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성왕의 길…온달의 길…산성을 걷다, 역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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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성왕의 길…온달의 길…산성을 걷다, 역사를 걷다

입력
2011.04.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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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다. 한반도에는 3,000여 개의 산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유난히 외침이 잦았던 오랜 역사의 흔적이다. 명산의 가장 좋은 터에 꼭 사찰이 들어앉았듯, 산자락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는 산성이 둘러있다.

산성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적을 방어하는 천혜의 요충지였다.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어 고대전투에서 매우 효과적이었다.

산성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은 중부 내륙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영토 다툼이 벌어졌던 그곳에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산성들이 있다.

충북도는 중부 내륙의 산성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추진 중이다. 충북도에 있는 수백 개의 산성 중 청주 상당산성, 보은 삼년산성, 단양 온달산성, 충주 충주ㆍ장미산성, 괴산 미륵산성, 제천 덕주산성 등 7곳이 현재 세계유산 잠재목록으로 신청돼 있다. 이 가운데 걷기 편하고, 경관이 좋은 세 곳을 골라 찾아갔다.

만개한 진달래가 성벽에 붉은 무늬를 찍어놓은 따뜻한 봄날이다. 세월의 더께가 시커멓게 내려앉은 성벽을 따라 걷는다. 오르락 내리락 길게 출렁이는 산성에 발걸음을 하나씩 얹는다. 오랜 시간을 더듬는 역사의 순례길이다.

온달산성

백두대간과 남한강이 빚어내는 풍광 한 가운데 산성이 있다. 한강수를 발 아래 두고 산 정상에 우뚝 선 산성은 스스로 천혜의 요새임을 당당히 드러낸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해발 427m의 성산에 축성된 길이 972m의 반월형 석성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평강공주의 낭군인 온달 장군이 전사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온달산성은 단양군이 조성한 온달관광지구를 지나야 한다. 시끌벅적한 식당거리를 지나 드라마 세트장인 합판으로 지어진 궁궐을 통과해야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산성까지는 30~40분 산을 타야 한다. 처음부터 계단길이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신록을 감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산길 중간쯤 갔을 때 사모정이 나타났다. 강변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세워진 정자다. 전사한 온달의 시신을 넣은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장사를 치를 수 없게 되자 평강공주가 눈물을 흘리며 달래서 떠나 보냈던 자리라고 한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를 즈음 드디어 넓적한 돌을 포개 쌓은 성벽이 나타났다. 푸른 창공으로 불쑥 도드라지게 솟아서일까, 성은 실제 크기에 비해 더 장대하게 느껴진다. 성가퀴 없는 성벽뿐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의 성벽. 장식이 없는 솔직함에서 성벽의 감동은 더 깊게 다가온다.

성벽 안에 들어섰다. 성 안은 비었다. 누각도, 창고 건물도 없다. 그 빈 공간을 푸른 풀과 작은 꽃들이 채웠다. 피비린내 진동하던 전투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온달산성은 지금 평화로운 봄볕과 봄이 꽉 찬 푸름만을 가두고 있다.

성벽을 타고 성을 한 바퀴 돌았다. 남한강이 발 아래다. 마치 물길이 성의 한쪽 문으로 들어왔다 다른 문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남한강 물줄기 굽이와 성곽의 굽이가 닮았다. 성벽의 넘실거림은 또 바로 옆 산자락의 넘실거림을 닮았다. 견고한 고대 산성과 백두대간의 산자락이 중첩된다. 우리 산성 중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품은 곳이란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성 안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 그늘 아래서 혼자만의 고요를 즐긴다. 나른한 봄볕을 즐긴다. 하늘의 구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온달과 평강의 사랑을 그려본다.

삼년산성

보은의 삼년산성은 보은읍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띈다. 보은의 평안을 담보하는 상징과 같은 존재다. 삼년산성은 신라가 삼국통일의 야망을 키울 수 있었던 상징적인 장소이자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에 따르면 자비왕 13년(470)에 삼년산성을 쌓았다. 성을 쌓기 시작해 3년 만에 성을 완성했다고 해 삼년산성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년산성에는 백제 성왕의 최후 이야기가 얽혀있다. 성왕은 554년 삼년산성 인근을 비밀리에 방문하기로 한다. 나제동맹을 깬 신라를 벌하러 전투에 나선 태자 여창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성왕의 비밀행차는 신라군의 첩보망에 걸려들었고, 매복하고 있던 삼년산성 출신 하급장수 도도의 칼에 성왕은 비참하게 최후를 맞고 만다. 이후 백제는 힘을 잃었고,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유하는 교두보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1.8km 길이의 성벽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성이다. 삼년산성의 성벽은 높이 20여m, 폭 8~10m에 이르며 웅장하고 견고하게 지어졌다. 정문 역할을 하는 서문지에 서면 삼년산성 성벽의 비밀이 나타난다. 바로 가로세로 엇갈림 쌓기다. 가로 60㎝, 세로 40㎝, 높이 10㎝ 정도의 직사각형 돌을 한 층은 가로로, 다음 층은 세로로 엇갈려 쌓아 견고함을 더했다. 성벽의 안쪽을 잡석이나 흙으로 채우는 다른 성벽과 달리 모든 성벽의 내부까지도 차곡차곡 성돌로만 쌓아 채웠다. 웬만한 투석기로는 부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문지로 들어서면 바로 커다란 연못을 만난다. 지금은 물이 빠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연못의 이름은 아미지다. 연못 바로 옆 바위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 전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글씨는 방금 새긴 듯 선명하다.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시민들에겐 친근한 곳이다. 소풍으로 가족나들이로 자주 찾는 곳이다.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토성으로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이뤄지다, 조선 후기 대대적인 개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얻게 됐다.

산성은 상당산(492m) 8부 능선에 4.2km에 걸쳐 빙 둘러있다. 오목한 분지를 품에 안고 산허리를 따라 쌓아나간 산성이다. 높은 산으로 걸어 올라야 만나는 다른 산성과 달리 산성입구까지 찻길이 놓여있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고개를 돌리면 너른 잔디밭 위로 상당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을 중심으로 양 옆의 거대한 성벽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산성 산책은 성벽 위를 걷거나 바로 옆 성벽과 나란히 나있는 숲길을 이용할 수 있다. 성벽 길에선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송림 숲길은 초록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상당산성 안에는 마을이 있다. 산성 안 저수지로는 꽤 큰 호수를 끼고 마을이 형성돼 있다. 산성을 찾는 이들에게 두부 파전 막걸리 등을 내놓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호수 주변엔 지금 꽃나무가 활짝 봄꽃을 피우고 있다.

단양·보은·청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온달관광단지 안에 있어 입장료(성인 5,000원)를 내야 한다. 드라마 세트장과 온달굴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주차장에서 시작해 산성을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2시간 가량 걸린다. 주변에 도담삼봉 등 단양팔경과 고씨동굴 등 관광지들이 가깝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나와 단양읍을 거쳐 59번 국도로 영월 방면으로 달리다 군간교에서 595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고씨동굴 방향으로 향하면 온달산성 입구가 나타난다.

삼년산성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보은IC에서 나와 보은군청 방향으로 가다 보면 군청 맞은편 산자락에 산성이 보인다. 산성 안에는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매 주말 산성 안에선 대장간 체험이 진행된다. 인근 속리산이나 보은향교 등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청주 외곽의 상당산성은 중부고속도로 오창IC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청주공항 방면으로 가다 17번 국도를 갈아타고 청주시 방면으로 우회전해선 다시 청주동부우회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상당산성 이정표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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