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주고 지속적으로 건강을 체크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건강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고, 지난 4일에는 관련단체 인사 및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건강관리서비스의 제도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건강관리의 질병예방 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금연과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으로 심혈관 질환의 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영국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으로 의료 이용이 20% 감소한 사례가 있고, 미국에서는 조기 검진사업으로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 결과, 의료비 지출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흡연 음주 운동부족 영양결핍만 잘 해결하면 질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25%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건강관리서비스의 질병예방 효과가 이미 밝혀졌고 국민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유사의료행위와 민간요법이 난립하고 있어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병원의 고급 건강검진과 건강관리 프로그램은 높은 비용 때문에 일반 국민이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소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질적인 면이나 접근성 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차 진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들은 여전히 예방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둔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건강보험 역시 계속되는 재정난 때문에 예방서비스 강화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사전 예방적인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총론적 인식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가 효과적으로 운용되면 국민 건강이 증진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의료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의 상업화를 부추겨 계층간의 건강 격차가 커지고 국민의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법안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서비스의 질적 관리 및 개인정보 유출 등 제도 운영상의 문제점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법안의 기본 취지는 제도권 밖에 있던 서비스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놓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건강관리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것이 과연 비용 효과적일까, 건강증진 효과도 없이 국민의료비만 더 키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판국에 적절한 시장 개입을 통하여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건강관리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 건강의 보호자로서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불안한 법이다. 국민 건강권 보장과 국민의료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 제기되고 있는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안전장치를 잘 강구했으면 한다. 집중적이고 밀도 있는 논의를 통해 여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문창진 한국건강증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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