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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몸이 잘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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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몸이 잘 사는 나라

입력
2011.04.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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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신용정보회사라는 곳에서 '채무불이행 정보등록 예정' 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세금이나 공과금 미리 알아서 꼬박꼬박 챙기고 사는 건 아니지만 낼 걸 안 낸 건 없는데 이건 뭔가 살펴보았더니 언젠가 쓴 국제전화요금 1만원 가량이 체납되었단다. 그럼 난 이제부터 신용불량자인가?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은데, 그런 거 잘못 확인했다가는 오히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경우를 당한다는 말을 들은 바도 있고, 고작 1만원인데 하는 마음도 있고, 아무튼 또 그대로 며칠을 보냈다.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그것 때문에 전화가 끊긴다거나 할 일이 없을 텐데도 그랬다.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

내야 하는 것 중에 반드시 챙겨내는 것이 있다. 건강보험료가 그 중의 하나인데, 이건 그야말로 몸에 관한 것이 아닌가. 내 몸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거의 평생 동안 직장과는 상관없이 살아서 대부분의 세월 동안 나는 지역가입자였다. 이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아서 재산정을 요구할 때는 내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인지를 증명해야 하니, 그것도 또 고약하다. 고약한 기분 누르고 통사정을 한다고 해서 보험료가 순순히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꾸역꾸역 내야 한다. 아무튼지 간에 몸에 관한 것이니.

외국에 한 달 두 달씩 나가 있게 될 때가 있는데, 해외 체류가 한달 이상이 되면 보험료가 환급된다. 그래서 해외체류 비용을 계산할 때, 환급되는 건강보험료를 수입으로 계산하기도 한다. 체류 기간이 석 달 넉 달 또는 그 이상이 되면 이거 괜찮은 수입이다. 그만큼 보험료 부담을 느낀다는 소리다. 그래도 아픈 데 없어 병원 갈 일 없으면 그게 최고의 복이다. 비싼 암보험 들었다고 암 걸리기 바랄 사람 없고, 고액의 생명보험 들었다고 죽을 날 기다릴 사람도 없다. 당연히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부담이 되든 안되든 내라는 만큼 내고, 그러고도 때때로 고마워한다. 고맙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면 다행스러워한다는 말이 옳겠다.

4월 직장인들의 건강보험료가 평달에 비해 3, 4배 가량 높아졌단다. 이런 세상에... 4월은 내가 간만에 직장보험 가입자가 된 첫 달이다. 봄부터 학교에서 강의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운수 나쁜 것을 내 탓이라고 해야 하나? 그럴 리가 없다.

건강보험의 재정이 악화된 이유로 정부 책임론이 있다. 국민 총 건강보험료의 20%를 부담해야 하는 정부가 자그마치 9년 동안이나, 무려 5조원 가량을 체납했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어쩌다 한 달 밀려도 이러다 아프면 어쩌나 걱정하고, 독촉장 받으면 가슴이 뛰고, 그래서 지레 병이 날 지경이다. 보험료 납부 못해 난 병이면 치료받기도 어렵겠다. 그러나 정부는 상관없겠다. 병 날 몸도 없고, 보험료 혜택 받아 치료받을 몸도 없으니.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건강보험료 급등에 대한 발표와 해명이 의도적으로 늦춰졌다는 것인데, 그게 선거 때문이라는 의혹이다.

4월 급등, 일부러 숨겼다니

여당 표에 미칠 표심을 우려하여 제때에 발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니 국민의 분노는 짐작하고도 남았다는 소리다. 짐작했으되 무시했다는 소리다. 국민의 건강도 무시하고, 마음도 무시하고, 잘 사는 나라 만들겠다고, 목청높이 외치기만 했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진다. 잘 사는 게 뭔가. 잘 사는 건 우선 몸의 일이다. 잘 입고, 잘 사는 것, 그 이전의 일이다.

의혹은 의혹이니 그 의혹에 대한 해명도 있겠다. 4.27 재보선이 끝났다. 투표율이 높았다고 한다. 잘 살아서 건강보험료쯤 신경도 안 쓰는 사람도 투표했을 것이고, 몸 아파 죽겠는데도 병원비 걱정이 먼저 앞서는 사람도 투표했을 것이다. 의혹을 단지 의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했겠고, 무시당해 화난 사람도 했을 것이다. 대답이 자명하겠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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