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하루에도 줄기세포라는 말 한두 번쯤 듣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온 나라가 온통 줄기세포 열풍이었다. 황우석 박사가 일으킨 바람이었다. 2004~2005년 얘기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했다. 암과 마비 같은 불치병을 넘는 위대한 진보의 첫 걸음을 우리가 내딛게 됐다고 함께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논문 조작이 드러났고 열망은 한 순간에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렸다. 줄기세포는 이후 웬만하면 돌아보기도 싫은 악몽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 줄기세포가 다시 돌아왔다.
■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엊그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인했다. 세계에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신청자는 차병원그룹. 차병원그룹은 미국 바이오벤처 ACT사와 함께 망막질환 치료제를 공동 개발해왔는데, ACT는 지난해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차병원그룹의 임상시험도 같은 치료제를 써서 진행된다. 첫 임상시험 대상은 망막 유전자 변이 등으로 시력을 잃는 '스타가르트(Stargardt)병' 환자다. 배아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망막세포 상피세포'를 망막에 직접 주입하는 치료다.
■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 연구는 황 박사의 안쓰러운 추락 이후에도 차병원그룹 등에 의해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 꾸준히 이어졌다. 무한 증식능력과 모든 세포로의 분화능력을 가진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신체조직의 손상부위를 회복토록 하는 치료제가 주종이었다. 2009년 1월에 미국 제론사가 척추손상 세포치료제를 개발해 FDA로부터 세계 최초의 승인을 얻어 임상시험의 돌파구를 열었다. 이후 차병원그룹이 망막질환 치료제로 미국과 한국에서 나란히 승인을 얻어 줄기세포 치료제 세계 최초 상용화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 차병원그룹은 또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해 2008년 적혈구를 생산한 데 이어 올 초 세계 최초로 혈소판까지 생산해 인공혈액 상용화에 앞서가고 있다. 차병원그룹은 '황우석 사태'로 중단된 황 박사 식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연구도 2009년 재개해 그가 도달했던 배반포단계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석 방식의 줄기세포 연구와 그의 연구에 자극 받은 국내외 연구가 속속 결실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다시 엉뚱한 아쉬움을 곱씹게 된다. 진실만이 최선일까? 그때 차라리 그 '참담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 황 박사의 연구가 계속됐다면 어땠을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