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이달 중순 정부의 한 고위공무원 인사 뉴스를 접한 외환딜러들은 아연 긴장했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국제금융차관보)에 최종구(사진) 씨가 임명된 것.
MB정부가 출범했던 2008년 그는 외환정책 실무사령탑인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었다. 현 정부 초반 고(高)환율정책을 이끌었던 이른바 '최-강(최중경차관-강만수장관)라인'의 막내이자 행동대장. 그런 그가 국제금융차관보로 2년 만에 컴백했으니, 외환시장 관계자들로선 '고환율의 추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끈한 복귀신고
예상대로 최 차관보는 화끈한 '복귀신고'를 했다. 28일 재정부 기자실을 들른 그는 최근 시장 움직임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최 차관보는 우선 "최근 원화절상(환율하락)이 너무 일방적"이라고 말했다.
"경상흑자나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 같은 자연스러운 요인 외에도 환율에 영향을 주는 큰 변수가 있다"며 그는 역외선물환(NDF) 시장의 투기성 거래를 지목했다. NDF 시장이 올 들어 200억달러 이상 순매도로 일관하는 데는 환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있다는 것. 그는 "원화강세를 점친 세력이 선물환을 계속 팔고 이 거래가 또다시 원화절상을 부르는 전형적인 강세사이클의 초입 단계로 보인다"며 "면밀히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은행들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최근의 원화강세에는 단기외채 급증도 작용하고 있는데, 그 주범이 '김치본드'라는 것. 국내 기업들이 원화 용도로 쓰기 위해 외화채권(김치본드)을 발행, 은행에서 원화로 바꾸는 바람에 환헤지를 위해 들여오는 단기차입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 한 해 61억달러였던 김치본드 발행규모가 올해는 1분기에만 37억달러나 됐다"며 "공기업과 은행들에게 이런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중인 외환특별 공동검사가 끝나면 국내외 은행들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도 축소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최-강라인의 추억
시장은 이날 그의 발언에 대해 "역시 최-강라인의 막내답다"는 반응. 현 정부 출범 초 재정부의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차관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선 (경상수지 등) 대외균형이 중요하며 환율도 그에 맞게 운용되어야 한다'는 대외균형론 및 환율주권론을 강조했고, 최 차관보는 이를 고환율정책으로 실천했다.
외환시장에선 최 차관보의 대응방식을 '매우 공격적'으로 평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고환율 뿐 아니라, 환율을 내릴 때도 화끈했다. 2008년7월초 수 차례 경고에도 환율의 과도한 급등세가 지속되자 그는 딜러들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에 무여 40억달러를 시장에 퍼부어 환율을 끌어내렸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시락 폭탄' 사건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최 차관보는 요즘도 "2008년 국장 시절이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는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선 수십억달러 지출(개입)도 종종 사후보고를 하곤 했다"며 "강 장관도 '전장의 장수는 소총을 쏠 지, 대포를 쏠 지 일일이 묻지 않는 법'이라며 전권을 맡겨줬다"고 회상했다.
환율 흐름 바뀌나
최 차관보의 복귀, 그리고 이날 발언을 두고 시장 일각에선 "정부의 환율정책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정부는 물가 부담 때문에 원ㆍ달러환율 하락을 용인해왔는데, 다시 고환율쪽으로 방향이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외환당국자는 "특정개인에 따라 환율방향이 바뀌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최 차관보의 발언 역시 방향 전환이나 특정 레벨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환율 흐름의 속도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의도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한 딜러는 "너무 빠지는 것 아니냐 싶을 때 시장에 겁을 한번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딜러는 "최 차관보 취임 이후 확실히 정부의 미세조정 움직임이 더 잦아지고 강해졌다"며 "시장에서 그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치본드란
기업들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 해외기업이 원화로 발행하면 아리랑본드와 구별된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2006년 처음 달러화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국내기업의 발행이 늘고 있다.
◆역외선물환(NDF)이란
미리 정한 만기 때 계약원금 교환 없이 선물환율과 현물환율 간 차이만을 계약 당시 지정한 통화(대개 달러화)로 결제하는 파생금융상품. 주로 홍콩 등 해외 외환시장에서 매매된다. 투기세력이 원화 강세를 예상하고 NDF 시장에서 국내 은행에 달러를 팔면 은행은 헤지를 위해 달러를 차입해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내다파는데 이 때 단기외채가 늘어난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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