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걷는 길에 저의 청암 스승이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모시는 ‘스페셜 게스트’입니다. 스승과 저는 상고와 대학 학과 선·후배의 인연이 있습니다. 물론 대학 은사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스승의 가르침에 좋은 학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제자입니다. 출근길에 제가 고교 때부터 살고 계신 스승댁인 청암장에 안부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고교시절부터 스승 댁에 교지 초대원고 받으러 드나들었으니 40년 가까이 드나드는 청암장입니다. 그 사이 스승은 불같은 세월 다 보내시고 물처럼 편안하시고 검은 교복에 빡빡머리였던 저는 양복 입고 시인입네 선생입네 발 바쁘게만 살고 있습니다. 스승은 제게 어버이 같은 분입니다. 스승의 연치 돌아가신 제 아버지보다 한 해 아래시고 제 어머니보다 한 해 위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찾아 뵙듯 편안합니다. 청암장에 들어서 거실에 놓아둔 영산홍 화분 아래 하얀 민들레 두 포기가 옮겨 심겨 있는 걸 보았습니다. 웬 꽃이냐며 자초지종을 여쭈었더니 지리산 둘레길 걷다 캐왔다고 합니다. 저는 꽃 도둑도 도둑이라며 스승께 항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대나무 지주대가 고개 숙인 하얀 민들레 한 포기를 받들고 있었습니다. 스승께서 직접 만들어 받쳐주신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스승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평생사랑이 저런 것이었다는 생각에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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