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개 대륙 가운데 우리나라가 아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못한 곳은 아프리카와 호주. 북미(미국) 남미(칠레 페루) 유럽(EU) 아시아(아세안 인도 등)에선 이미 FTA 네크워크가 구축됐다. 워낙 저개발국가들이라 자유무역의 틀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아프리카를 제외한다면, 한국으로선 오세아니아가 FTA를 체결해야 할 '마지막 대륙'인 셈이다.
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간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는 한ㆍ호주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타결이란 공동목표를 제시했다. 양국 정상까지 공감대를 표시한 이상, 금년 말이면 오세아니아 대륙과도 자유무역의 끈이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사실 양국의 협상은 이미 꽤 진전된 상태. 총 23개 장(chapter)으로 구성된 협정문 가운데 13개 장은 이미 합의가 도출됐다. 하지만 연내 타결의 결승점에 도달하려면 큰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한다. 바로 쇠고기다. 한ㆍ미 FTA 만큼은 아니더라도, 쇠고기는 한ㆍ호주 FTA협상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호주의 위기감
사실 호주산 쇠고기는 우리나라 식당과 가정 식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수입한 호주산 쇠고기는 12만1,791톤으로, 전체 수입 쇠고기시장의 절반(49.7%)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FTA협상에서 호주는 우리 정부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와 같은 수준으로 개방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현행 40%인 쇠고기 관세를 한ㆍ미 FTA와 동일하게 15년 간 단계적으로 인하한 후 완전 철폐하라는 것.
실제로 호주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2008년 호주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쇠고기 시장점유율은 58%에 달했지만 작년엔 50% 이하로 떨어졌다. 절대수입물량도 1만톤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는 점유율이 2008년 23%에서 지난해에는 37%까지 높아졌고, 물량도 4만톤 가량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ㆍ미 FTA가 발효돼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까지 낮아진다면, 호주산의 설 땅은 더 비좁아질 것이란 게 호주 측 인식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쇠고기는 추가개방불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1위 경쟁력을 갖춘 호주산 쇠고기에 관세혜택까지 더 줄 이유는 없다는 것. 한 정부 관계자는 "호주와 미국은 국내 수입쇠고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어 미국도 호주와 FTA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호주에 개방 폭을 확대할 경우 미국은 추가개방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빅딜 가능성?
양국간 협상은 작년 5월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 하지만 양국 정상이 합의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 협상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협상타결을 위한 '빅딜'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우리가 쇠고기를 내주는 대신 호주로부터 자동차를 받는다는 것이 골자다.
자동차는 우리나라가 호주에 판 수출품 가운데 약 31%(16만3,000대, 20억9,800만달러)를 차지하는 1위 품목. 만약 우리나라가 호주산 쇠고기 수입관세를 철폐해주는 대신, 호주가 한국산 자동차 수입 관세를 없애준다면 우리로서도 해 볼만한 거래다. 국내 자동차 업계관계자는 "호주는 지난 2005년 태국과 FTA를 맺으면서 태국에서 만든 일제 자동차 관세가 폐지됐다"면서 "현지에서 우리나라가 크게 위협받는 상황인 만큼 우리나라도 이번 FTA협상에서 상응하는 관세철폐를 얻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태라면 연내 타결을 위해 자동차-쇠고기의 빅딜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남는다. 바로 축산농가. 구제역 피해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쇠고기 시장을 더 열어준다면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대선 등 정치일정도 부담스런 대목. 그렇기 때문에 통상당국 주변에서도 "연내 타결을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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