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얘기다. 그는 오늘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간다.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1위답게 무려 24개 언론사 기자들이 동행 취재를 한다. '미래권력 1순위'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이렇듯 박 전 대표는 항상 인파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다 보니 참모와 지인, 언론에 이르기까지 훈수와 충고가 끊이지 않는다. '소통 부재다' '대중 접촉이 부족하다' '원칙만 앞세운다' 등.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빠진 듯 하다. "아니 되옵니다"라는 식의 총론적 언급에 그치는 것 같아서일까. 딱 부러진 해법이 없어서일까. 아마 박 전 대표의 속내도 적잖이 답답할 것이다. 되풀이 훈수에 지칠 것도 같다. 그래서 각론 한가지를 말해보려 한다.
세간엔 이런 말도 나돈다. "박근혜는 괜찮은데, 주위 사람들이 별로 …"다. 특정인사를 거론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박 전 대표는 장막 정치를 즐겼다. 치고 빠지는 단답형 패턴으로 정치적 권위를 유지했다. 차별화한 존재감을 과시한 뒤에는 이내 측근 병풍 뒤로 모습을 감췄다. '나서지 않는 게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돕는 것'이란 원칙을 지키려고 그랬다지만, 세상 모든 원칙은 상대적이고 제한적이란 인식도 있다.
어쨌든 박 전 대표의 한마디 이후에는 측근들이 알아서 지원ㆍ엄호 사격에 나서곤 했다. 대체로 TK(대구, 경북)와 보수를 기반으로 한 그룹이다. 가뜩이나 이런 이미지가 강한 판에 이들로 투영되는 모습도 중도적 입장에서 보면 그리 긍정적일 리가 없다. 지금 전국 단위로 만들어지는 친박 단체인 '희망포럼' 참가자들의 면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다른 무리가 끼어들려 해도 동지애를 내세운 적통성 앞에는 움츠려 든다. 겹겹이 세워진 병풍의 순혈주의 때문이다. 당내도 이런데 당밖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성공적인 전략으로 여론조사 1위를 달리지 않느냐'고 자평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30% 중반대의 높은 지지율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선 1년 8개월을 남기고 지지율이 30%를 넘긴 것은 굉장히 높은 것이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이명박 후보와 박 후보로 압축됐을 때도 박 후보의 지지율은 30% 수준에 이르렀다. 심하게 얘기하면 그 동안 지지자가 거의 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그 많은 유권자가 붕 떠있는 셈이다.
그럼 이건 실패로 봐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는 또다시 정치 현장의 최일선에 나서야 한다. 시대정신이 바뀌듯, 네거티브 전략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일변도 모습으론 필패다.
19년 전 민주계 출신인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발판 삼아 절대 다수의 민정계 의원들을 끌어 안았다. 투사 이미지가 강했던 김 후보에게 이들 '신(新) 민주계'가 가세하면서 안정적인 보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성공했다.
이에 반해 9년 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경우, 비슷비슷한 측근들이 에워싸는 바람에 외부와 소통이 단절됐고, 이미지 변신도 하지 못했다. 그게 오만으로 비쳤고, '이회창이냐 아니냐'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졌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누구와 닮아 있는가. 벌써부터 당 밖에서는'차기가 박근혜냐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내에서는 한쪽 진영의 수장으로만 이미지가 고정되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후보로 거듭날 수 없다. 당 안팎의 '신(新) 친박계'가 필요하다. 욕지미래 선찰이연(慾知未來 先察已然). '미래를 알려거든 지나간 일을 살펴보라'는 옛말에 답이 있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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