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저명 원로 정치인들의 모임인'디 엘더스' 방북단이 오늘 2박3일의 평양 일정을 마치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서울에 온다. 단장인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국가수반 4명으로 구성된 방북단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려 있다. 하지만 이들을 맞는 우리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한 정도를 넘어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에도 껄끄러운 방북단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은 그제 내ㆍ외신 기자회견에서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그렇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방문이고, 어떤 정부와도 관련되어 이뤄진 방문이 아니라는 이유다. 하지만 '개인적 자격'의 방문을 문제 삼는다면 좀 어폐가 있다. 엘더스 그룹이 지구촌의 평화 정착과 인권 증진, 빈곤 해결 등 인도주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독립'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6명의 전직 국가수반과 전 유엔사무총장, 6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을 회원 및 명예회원으로 두고 있으나 특정 국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 않다. 어떤 국가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즉 '개인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카터 전 대통령 등이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이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같은 견지에서 이들에게 김정일 정권의 '심부름꾼'이니 '대변인'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핀트를 벗어나는 일이다. 일행 가운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했다. 방북단은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와 인권상황, 빈곤 문제 등과 관련해 북한 정권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이들이 평양에서 가져올 북핵 관련 메시지다. 김성환 장관은 "굳이 제 3자, 민간인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카터 일행이 특별한 메시지를 가져오리라 기대하지 않으나 가져온다 해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6자회담 재개 3단계 해법 중 첫 단계인 남북 수석대표 회담에서 직접 그 진정성을 확인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제 방한한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와도 3단계 해법을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회담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남북대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남북 대화에 핵 문제도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남북수석대표 회담이 열린다 해도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이르다. 회담 성과를 보고, 즉 북한이 내보인 진정성에 대한 '간'을 보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 해결의 본질은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주고받기 거래다. 거칠게 말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핵을 사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과연 북한이 정말로 핵을 팔 생각이 있는지 회의가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말 필요한 일은 북한이 핵을 팔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북핵 돌파구로 활용해야
6자회담 남북수석대표회담에서는 이 작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하겠다고 하지만 공허한 말장난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북한의 핵 폐기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상으로, 북한도 핵 포기 대가로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분명하게 얻어낼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카터라도 그 불신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가 카터 일행의 방북 성과에 별 기대를 걸지 않은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타박만 하고 있어서는 달라질 게 없다. 정말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그들의 약소한 방북 성과까지도 북한이 빠져나갈 수 없는 강력한 북핵 협상의 틀을 새로 짜는 데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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