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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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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몸을 위한 변명

입력
2011.04.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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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기도 한 마종기 시인에 의하면, 사람은 죽는 순간 몸무게가 21g 줄어든다. 무거운 어른, 마른 여자 할 것 없이 똑같다는 고작 동전 다섯 개의 무게다. 시인은 묻는다. 그것은 사랑의 무게일까, 생명의 무게일까, 영혼의 무게일까. 죽은 사람의 몸에서 풀려나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그 무게, 한번쯤 혼자가 된 '너'를 만나고 싶다고도 한다('잡담 길들이기 8').

왜 아니겠는가. 사랑인지 생명인지 영혼인지, 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것은 시인만이 아닐 것이다.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고매한 정신이고 영혼이지 비루한 육신이 아니라니 말이다. 문학도 예술도 그 '한 길 사람 속'을 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온 긴 세월, 우리가 애면글면 달래고 얼러가며 매달린 것은 언제나 마음이고 정신이었지 몸이 아니었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그처럼 횡포를 부리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닐까.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과 말같이 달리는 뜻'(心猿意馬)을 말 없이 감내하면서 무거운 삶을 지탱해 주는 몸 말이다. 그러나 좀처럼 불평할 줄 모르는 이 미련하고 충직한 하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비정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금이라도 나태한가 싶으면 병원의 차가운 기계 위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고작이다. 이 때 내 추억의 지문들을 읽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정작 주인인 내가 아니라 기계라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가. 하물며 그 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 수임에랴.

엄마 아빠는 이제 진짜 고아네! 재작년, 1년여 투병 끝에 양가의 마지막 어른이시던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딴에는 위로랍시고 딸아이는 너스레를 떨었다. "잘 하면 곁에는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어/ 가장 완벽한 나이라고 어떤 이는 말하지만/ 꽃병에는 가쁜 숨을 할딱이며/ 반쯤 상처 입은 꽃 몇 송이 꽂혀 있다/ 두려울 건 없지만 쓸쓸한 배경"이라는 '오십 세'(문정희)였다.

잘 하면 완벽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곁에 부모가 없어서였을까. 두려운 게 없기는커녕 천지가 두려움이었다. 아마도 이제 나는 부모로만, 어른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때 내가 의지하기로 한 것은 걸핏하면 변덕을 부리는 마음이 아니라, 그 정처 없는 마음 때문에 몸 둘 바 모르고 서성이던 내 몸이었다. 욕망과 불면에 결박 당한 채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던 몸, 아프거나 바쁘기만 했던 내 몸'에게 비로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피트니스 센터는 대체로 활기가 넘친다. 바야흐로 몸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모두들 '몸 만들기'에 열심이다. 그러나 내게 몸은 어김없는 삶의 흔적이다. 땀 흘려 고백한 시간이 손바닥의 굳은살에, 다리의 알통에, 뻣뻣한 어깨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이어트가 목적도 아니고, 딸아이 말마따나 '몸짱 할머니'가 될 것도 아닌 나의 운동법은 그저 내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다독이는 일이다.

오늘도 앙칼진 정신을 따라다니며 전전긍긍했던 내 몸을 러닝 머신 위에, 요가 교실의 텅 빈 마루 위에 풀어 놓는다. 요가에서 명상은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각자체를 잊으라는 뜻이란다. 내 몸! 수고했다. 고맙게도 여전히 충직한 내 몸은 정신에게 새로운 활기로 보답한다. 어쭙잖게나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집중력 덕이다.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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