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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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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타자기

입력
2011.04.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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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키보드의 자판은 4개 열이고, 영어 알파벳이 어지럽게 배열돼 있다. 위에서 두 번째 줄 왼쪽부터 Q, W, E, R 등이 이어지는데, 어떤 원칙으로 배열했는지 알쏭달쏭하다. 쿼티(QWERTY) 키보드는 1873년 미국인 크리스토퍼 숄스가 개발한 타자기의 자판과 동일하다. 그는 1868년 6월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타자기를 개발했는데, 알파벳 배열이 너무 쉬워 타자수들이 글자를 빨리 치는 바람에 고장이 잦았다. 그래서 천천히 치도록 많이 사용하는 알파벳을 멀리 배열하는 방식으로 자판을 개량했다. 숄스는 특허권을 1874년 라이플총 제조사인 레밍턴 앤선즈에 1만2,000달러를 받고 팔았다.

■ 한글타자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전문의로 1938년 서울 서린동에 안과의원을 열었던 공병우 박사가 만들었다. 눈병 치료를 받으러 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였다. 공 박사는 해방 전 경성제대 의학부 연구실에서 일할 때 영문타자기를 처음 봤고, 일본 의학서적을 우리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글타자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6개월의 연구 끝에 1949년 한글이 가로로 찍히는 세벌식 타자기를 개발, 한국 최초로 미국 특허를 받았다. 이 타자기는 1953년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군부대와 행정부처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 당시엔 타자기와 타자수가 부족해 대부분의 공문서는 손으로 쓰여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간소화 지시로 1962년 1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하면서 타자기가 본격적으로 공문서 작성에 활용됐다. 90년대 들어 컴퓨터가 타자기를 대신하기 시작했고, 공문서 규격도 B5에서 A4로 바뀌었다. 2000년대엔 전자문서시스템이 도입돼 종이문서를 출력하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 5월부터는 종이 판결문도 자취를 감춘다. 판사들이 전자파일로 판결문을 작성해 공인인증서로 전자 날인을 하면, 소송 당사자가 온라인으로 판결문을 확인한다.

■ 인도에 있던 지구상의 마지막 타자기 공장이 25일 문을 닫았다. 2009년만 해도 1만여 대의 타자기를 팔았지만, 작년에 800대로 격감했고 올 들어 그런 수요마저 실종된 탓이다. 100년간 세계 제일의 타자기 업체로 군림했던 미국의 스미스 코로나는 이미 16년 전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사무장비의 혁신으로 각광받았던 타자기가 145년 만에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필름 제조회사와 비디오 대여점 체인의 운명도 비슷하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다 보면 언제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될지 모른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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