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에서 부당하게 인출된 예금을 환수하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돈을 빼간 예금자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소송을 통한 환수다. 금융감독원도 그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그러나 법조계 내에서도 승소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7일 금감원은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직원들의 친척이나 VIP 고객 등에 의해 인출된 예금의 내역을 조사, 부당 인출 사실이 확인되면 환수에 총력을 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혁세 금감원장도 이날 부당 인출금에 대한 환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행정절차를 통해 직접 예금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따라서 부당인출로 피해를 본(지금도 예금이 묶여 있는) 일반 예금자들이, 미리 돈을 빼간 VIP고객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금감원이 환수 근거로 내세운 법 조항은 '채권자 취소권'을 규정한 민법 제406조다. 채무자(저축은행)가 악의로 채권자(일반 예금주)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일부 고객에게만 출금 통보)를 한 경우, 취소나 원상회복을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보통 채무자가 채권자 모르게 제3자 등에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사해행위)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 이용된다.
이 같은 금감원 구상에 대해 법무법인 장백의 조명선 대표변호사는 "저축은행이 일부 고객에게만 돈을 지급해 다른 채권자(예금주)에 피해를 준 것이므로 환수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저축은행이나 인출 고객의 악의(惡意)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사전에 인출한 고객입장에선 은행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온 예외적 상황으로 미루어 자신만 특혜를 누린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원이 악의로 추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도 "채무를 한 사람에게만 우선 변제하면 채권자 취소권이 성립한다"며 환수 가능성을 높게 봤다. 김앤장의 다른 변호사 역시 "묘수가 될 수도 있겠다"며 환수 가능 쪽에 손을 들어줬다.
금융 분야에 밝은 한 변호사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환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부 VIP 고객들이 예금을 빼가면서 저축은행 예금잔고가 줄어들었는데, 이 때문에 예금자보호제도 한도(5,000만원)를 넘겨 예금한 사람들이 나눠가져야 할 몫이 그만큼 줄어들었을 터. 예보도 이 때문에 손실을 입은 만큼 소송 주체로 나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소송을 통한 예금 환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이론상 불가능하지 않지만 판례도 없고 상황과 법 조항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며 "소송에서 논란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대형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저축은행이 돈을 지급한 것은 일종의 변제인데 변제행위가 사해행위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서는 학설이 엇갈린다"고 설명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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