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교육과정, 학교는 몸살] '엉클어진 수업 편성' 현장 아우성역사 5학년으로 옮겨 6학년 '초치기 수업'5학년때 배운 사회수업은 6학년에 되풀이영어는 기초과정 건너뛰고 심화학습할 판
"인류의 태동부터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까지 수백만년에 해당하는 역사를 1시간에 뚝딱 끝냈습니다."
경기도 모 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인 김모 교사의 푸념이다. 김 교사는 "선사시대는 드라마로도 다뤄지지 않아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이 높았던 부분"이라며 "예년엔 2~3시간을 할애했는데 이번 6학년들은 수업시간이 부족해 후딱 교과서를 읽는 수준에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들의 역사 수업이 숨차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 학기 동안 51시간이 배정됐던 역사 수업이 올해는 32시간으로 줄었다.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수업 편성이 엉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초등학교 역사 수업은 6학년 1학기에 이뤄졌다. 1997년 개정된 7차 교육과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2007 개정 교육과정(이하 2007과정)에선 역사 수업을 5학년에 편성해 1년간 102시간을 가르치도록 했다. 2007과정은 2009년 초등 1,2학년, 2010년 3,4학년, 올해 5,6학년에 연차적으로 적용됐다. 전체적으로 역사 수업시간이 늘었지만 6학년에 배우던 것이 5학년으로 옮겨가면서 올해 6학년이 된 학생들은 역사를 배우지 못하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리, 일반 사회 시간을 조정해 임시로 역사 수업 32시간을 편성했지만 시간은 종전보다 대폭 줄었다.
교사들은 불만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려운 내용의 역사를 32시간에 압축해 가르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간에 맞춰 진도 나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수업이 재미없고, 아이들도 흥미를 잃는다"고 말했다.
역사뿐이 아니다. 과학에선 6학년 때 배웠던 '지진' 단원이 5학년으로 내려갔다. 일본의 지진해일 피해로 지진의 발생 원인과 대처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올해 6학년 학생들은 이를 배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성교육과 밀접한 과학의 '우리 몸의 생김새'와 실과의 '목재품 만들기' 단원도 6학년에서 5학년으로 내려가 같은 문제가 생겼다.
6학년들은 영어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다. 2007과정은 3학년2학기부터 알파벳의 소리를 익히는 '파닉스'를 가르치도록 했다. 이전까지 영어 수업은 듣고 말하기에 중점을 둬 파닉스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영어교육이 강화되면서 읽기와 쓰기를 위한 '파닉스'가 2007과정에 반영됐고, 수업시간도 주당 1시간씩 늘어났다. 그런데 6학년들은 작년까지 7차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아 파닉스도 배우지 않고,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의 영어 수업을 받다가 올해 2007과정이 적용되면서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한 교사는 "2007과정의 6학년 영어수준은 3,4,5학년 때 늘어난 수업 내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훨씬 어렵다. 지금 6학년들은 파닉스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중복해서 배우는 교과 내용도 수두룩하다. 6학년이 배우는 사회는 이미 작년 5학년 때 배운 내용들과 상당부분 겹친다. '국토의 개발과 환경보전'은 '아름다운 우리국토'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과제'로 개념만 일부 바뀌었을 뿐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교과부는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막기 위해 6학년 역사는 학생용 교재와 교사용 지도 자료를 제작해 배부했고, 과학도 누락된 부분을 교사들이 활용하기 편하도록 파일 형태로 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분히 예상된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지 않고 일이 터진 뒤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