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공간 지하철에선 하나의 화두(話頭)를 잡고 내릴 때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어제 출근길의 그것은 '공명조'였다. 역사 귀퉁이에 '공명조를 아십니까'라는 조그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둘 달린 새. 평소 사이 좋게 지내지만 맛있는 먹이가 생기면 서로 싸운다(위장은 함께 쓰니 누가 먹어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저놈만 없어지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독이 든 음식을 상대가 먹도록 전략을 세운다. 한 놈이 죽고, 다른 놈이 잠시 식탁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몸에 독이 퍼져 곧 자신도 죽는다. '공명지조(共命之鳥)'다.
■ 히말라야 설국 혹은 중앙아시아의 전설에서 나온 건지, 불교 경전 이 원조인지 알 수 없다. 북한 남포시 인근에서 발견된 고구려시대 덕흥리 고분 벽화에까지 그림이 남아 있다. 공명조의 반대말(?)은 '비익조'쯤 되겠다.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으니 제대로 보지도 날지도 못한다. 하지만 두 마리가 날개를 가지런히 하면(비익ㆍ比翼)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공명조와 마찬가지로 중국 서역지방으로부터 전설로 전해져 오는 얘기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백락천의 에 인용돼 있다.
■ 오늘 실시되는 선거 가운데 특히 강원지사 보궐선거를 생각한다. A후보와 B후보는 공명조의 비유를 정확히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성향을 따져보면 크게 다른 몸통으로 보기 어렵다. 학연ㆍ지연에 일터까지, 수십 년 동안 같은 몸통에 속해 있었다. 한데 '맛있는 먹이'를 앞에 두었다. 독을 섞거나 독이 든 음식을 떠넘기는 상황이 전개됐다. 누구의 것에 누가 그것을 넣었는지 밝히자며 5분 간격으로 서로를 검찰에 고소했다. 누가 살아남더라도 자신도 그 독성을 고스란히 받아야 할 처지다. 오늘 치르는 다른 선거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 그렇다면 비익조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을까. 야권의 후보 통합을 거기에 비유하긴 어렵다. '비(非)ㆍ반(反) 한나라당'으로 떠밀려 생겨났기 때문이다. 공명조투성이인 선거 양상에 따끔한 경고를 하려면 투표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다. 후보와 유권자가 눈과 날개를 가지런히 하여야 정치 발전을 위한 비익조의 모습을 갖추게 될 터이다. 후보들이 무슨 짓을 하든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화두는 여기서 멈췄다. 그 포스터 마지막에 있던 말이 떠올랐다. "공명조(혹은 비익조)는 과연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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