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목숨을 걸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살기 위해 물질을 한다고 합니다. 삶의 아픔은 물 속에서 치유가 됩니다. 물 속의 고통 역시 물 밖에서 동료들과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씻겨나갑니다. 그 과정을 제 눈으로 생생히 봤습니다.”
최근 23인의 제주 해녀와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삶을 200여 컷의 사진과 글로 담은 사진에세이 를 출간한 브랜다 백선우(63)씨를 26일 만났다. Moon Tides는 해녀들이 작업하는 ‘물때’를 영어로 번역한 말이다. 재미교포 3세 사진 작가로 그 동안 세 권의 사진집과 수필집을 낸 그는 재주 해녀를 기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결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죽는 그날까지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죽는 날을 기다리며 소일거리를 찾고, 삶을 낭비하는 나 같은 세대 여성들에게 목숨을 건 그들의 생존 방식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이번 사진집을 위해 브랜다씨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제주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적어도 7개월간은 아예 미국의 집을 떠나 해녀들과 함께 숙식까지 하며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는 “80년대 처음 해녀를 알게 됐을 때는 단순히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품위와 열정이 눈에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그들의 삶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 같은 게 생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녀를 알고 싶어하는 그에게 기존의 자료는 거의 없었다. 일부 학술 논문과 여행 잡지, 언론 보도를 통한 단편적인 것뿐이었다. 그는 “3년간 모든 자료를 다 뒤졌다. 하지만 해녀를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서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아마 해녀에 관한 최초의 영문 기록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해녀들 사이로 뛰어든 이유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교포 3세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한 그에게 한국은 ‘할머니의 나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할머니의 나라에 바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조부모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간 이민 1세대다.
브랜다씨는 해녀들과의 ‘동거’를 통해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후의 아픔이 해녀들과의 교감 과정에서 치유됐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16살 때인 1990년대 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Orange County Register 등 20년간 일했던 신문기자 일을 그만둘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아들을 생각하지만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 살려고 물질을 하는 해녀들에게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힘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욕심을 버리는 모습 역시 또 하나의 배움이었다. “해녀들은 물속에서 호흡을 돕는 장비 없이 맨 숨으로 깊은 곳은 20m까지 들어갑니다. 숨이 다 찼을 때 마지막 전복 하나를 주우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욕심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 역시 깊지는 않지만 얕은 바다 속으로 몇 번이고 뛰어드는 해녀경험을 했다.
그는 끝으로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힘들었다. 비천한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내 고통을 밑바닥까지 드러내 준 ‘해녀 할머니’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에는 5,000여명 가량의 해녀가 활동 중이며 60, 70대 할머니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일본(2,000여명)과 한국 단 두 나라뿐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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