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거두려다 또 하는 것이 연극이다.” 20일 32회 서울연극제의 개막을 선언하며 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이 했던 말에는 짐짓 비장함마저 서려 있다. 위기의 행진은 그러나 ‘연극, 우리 시대의 거울_ 이슈!’라는 이름의 축제로 거듭나 5월 15일까지 대학로 일대의 풍경을 바꿀 전망이다.
우리를 안도케 하는 것은 위기 속에 피어난 꽃들이다. 공식참가작이란 이름의 선물이 있어 서울연극제는 당당하다.
출소한 4명의 사내들을 기다리는 세상은 적대적이기만 했다. 가족들이 죽었거나 가족들을 만나기도 전해 살해당해야 했던 그들. 극단 동의 ‘샘플 054씨 외 3인’ 속에 그려지는 모든 상황은 법무부 연구자들이 작성한 논문 속의 상황이다. 강량원씨 작ㆍ연출. 5월 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029년 서울의 뉴타운에 이사 온 인류학 박사에게 해괴한 사건이 잇따른다. 이 호화 타운을 짓기 위해 희생됐던 철거민의 유령과 구천을 떠도는 인디언들의 혼백이 박사에게 끔찍한 이미지를 들이댄다. 용산 참사의 원혼들도 가세하면서 극단 드림플레이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우리를 추궁한다. 김재엽 작ㆍ연출. 4월 28일~5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실패에 대한 강박에 얽매인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은 극단 죽죽의 ‘토란(土亂)_ 극(劇)’이 보여 주는 몽환적 무대로 치환된다. 경쟁에 내몰려 칼끝에 선 듯 살아가는 극중 인물들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관객들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김낙형씨 작ㆍ 연출. 5월 4~8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지방 도시 변두리에서 불편한 이웃을 두고 살아가던 노부부에게 이혼한 아들이 찾아온다. 그는 죽음을 앞둔 부모를 지켜보며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극단 이루의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는 중견 배우 박용수씨의 열연이 기대된다. 손기호씨 작ㆍ연출, 5월 6~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죽음을 앞두고 있는 8순의 노인은 응달로 내몰린 그들의 비애와 마지막 희망을 힘겹게 그려 낸다. 극단 √21의 ‘2g의 아킬레스건’은 몽환적 어법으로 가득 차 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무대는 죽은 어머니의 한을 그려내며 가족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묻는다. 제목은 노인의 인생에서 숨어 있던 2%를 뜻한다. 김원태씨 작, 박재완씨 연출, 5월 11~1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로얄씨어터의 ‘why not?’은 인터넷의 선정주의에 대해 경고한다. 자신의 뉴스 사이트에 선정적 소설을 띄워 일약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된 사장이 보다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네티즌에 의해 파멸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윤상훈씨 작, 류근혜씨 연출, 5월 11일~1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작은신화는 ‘만선’으로 현대 가정의 해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슴없이 비리를 택하는 경찰관 아들, 공상만 하는 지체장애자 딸 등은 핍진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원씨 작, 신동인씨 연출, 5월 12~15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이미 극단 필통의 ‘전쟁을 로비하라’, 극단 가변의 ‘보스, 오 마이 보스’ 등도 새로운 주제와 어법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들 공식참가작 8편을 비롯, 올해는 총 30여개의 작품이 축제의 불을 지펴 올린다. (02)765_750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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